자연과의 공존 일깨우는 고인돌 1980년대부터 찍어

ⓒ권태균, 침묵하는 돌, 1984년 전남 광양
발렌타인데이 즈음, 김중만 사진작가는 십 수년간 모아온 돌을 꺼내놓았다.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모아온 색색의 하트 모양의 돌들. 오랜 세월 자연이 다듬어낸 '스톤 하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방식과 정의만큼이나 다채로웠다.

언젠가 한 번쯤, 정성스럽게 모아온 돌을 카메라에 담아보겠다던 작가의 다짐은 지난 2월 20일까지 롯데갤러리에서 지켜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시된 사랑을 담은 돌에선 유난히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권태균 작가가 찾아낸 돌은 '스톤 하트'와는 사뭇 다르다. 권 작가의 프레임 속엔 고대인들의 족장 무덤에 얹었던 돌, 고인돌이 담겼다. 지구 상에 남은 6만여 기의 고인돌 중 남한에 3만여 기가 있고, 북한에 2만여 기가 있다고 한다. 청동기시대에 강성한 부족국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고인돌이 밀집된 고창과 화순, 강화 고인돌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것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거석에는 신비한 영이 깃들어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종한다는 고대인의 믿음은 완전히 소멸됐다. 그것은 하나의 돌덩이로 기능할 뿐이다. 마을에 길을 내면서 사용하기도 하고, 집 마당의 장독대가 되거나, 부엌의 부뚜막이 되기도 한다. 때론 TV 안테나를 고정하는 지지대로도 기능한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빈번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권태균 작가는 이처럼 무심한 현실 속에 훼손된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1980년대부터 고인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찍은 수백 수천 개의 고인돌 사진은 역사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의 공존이었다. 고인돌은 영원한 항구성 속에서 침묵하는 돌이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권태균, 침묵하는 돌, 1997년 나주 도곡
2천 년 넘게 바람과 나무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온 돌은 그 형체 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들으려는 자에게만 들리는, 침묵하는 돌. 주변의 풍경 속에 조화롭게 자리한 고인돌이 바삐 돌아가는 현대 문명과 어떤 어울림을 이루고 있는지, 권태균의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침묵하는 돌>은 3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된다. (051)746-0055


ⓒ권태균, 침묵하는 돌, 2002년 경주시 천북면 오야리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