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네이션 전시 이웃돕기서 야생ㆍ반려 동물로 확장

<반달아, 사랑해> 전-이현희의 '꿈꾸는 시간', 2011
낙서 가득한 콘크리트 담벼락에 반달곰을 애타게 찾는 벽보가 나붙었다. 검은 털 사이로 하얀 초승달을 가슴에 품고 사는 반달가슴곰의 존재는 벽보의 그림으로만 짐작해본다. 사람도, 차도, 건물도 없는 나무가 무성한 숲 속으로 간 것일까.

어디엔가 있을 반달곰을 찾는 이영지 작가의 그림 '반달아, 고마워'. 이 작품이 걸린 곳은 서울 관훈동에 위치한 미술공간現이다. 3월 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전시 <반달아, 사랑해>는 단지 감상에 그치지 않고 반달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반달곰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넘나들던 지리산과 덕유산의 생태축이 88고속도로 건립으로 잘려나가자 이를 복원하기 위한 기금 마련 전시다.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 복원을 위해 2001년에 시작된 반달곰 복원프로젝트. 종종 다큐멘터리와 기사를 통해 반달곰의 탄생과 지리산 방사, 적응, 생태에 관한 소식이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살아가는 환경은 여전히 개발논리에 짓밟히고 있다.

이번 전시엔 반달곰의 생태환경 개선에 공감한 화가 작품 55점이 걸렸다. 오순환, 안윤모, 석철주, 이용석, 이만수, 이영지, 이현열 등 29명의 작가가 기꺼이 동참했다. 전시 성격에 맞춰 반달곰을 소재로 새롭게 작품을 제작한 작가도 있고, 기존의 작품을 내놓은 작가도 있다.

<반달아, 사랑해> 전-이영지의 '반달아, 고마워', 2010
"판매수익을 통한 기금마련도 중요하지만 전시를 통해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의 중요성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의도로 기획됐다. 반달가슴곰 복원은 곧 생태계 복원을 의미한다. 작품을 사면서 프로젝트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자원봉사자로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미술공간現의 김경민 큐레이터가 밝히는 기획의도다.

그림이나 사진을 사는 것이 곧 기부인 전시나 아트페어, 경매 등을 미술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종종 NGO단체에서 소외된 이웃 돕기 목적의 전시를 연말의 연례행사로 열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에는 갤러리나 경매회사, 혹은 작가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광주신세계갤러리는 이웃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행복나눔 아트페어'를 2008년부터 매년 연말 열어오고 있다. 광주 지역의 미술인들이 참여하는 아트페어에는 지난해 79명의 작가들의 15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2008년, 2009년에 걸쳐 50여 점이 판매되었고, 그 중 조성된 2천여만 원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졌다. 지난해 전시에는 황영성, 송필용, 이이남, 전현숙, 주대희 등 광주의 원로, 중견, 유망 작가가 대거 참여했다. 그 결과 아트페어를 통해 36점이 판매됐고 총 수익금 3740만 원 중 1496만 원을 광주시에 전달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다.

케이 옥션도 2008년부터 새해 첫 경매인 '사랑나눔 경매'가 유명하다. 2008, 2009년에는 경매 수익금 절반이 소아암환자를 위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됐다. 2010년부터는 소외계층 미술 영재를 후원하는 'K옥션 주니어 아티스트' 기금 마련을 위해 한국 메세나 협의회에 기부하고 있다.

<반달아, 사랑해> 전-박향미의 '재미있니', 2010
올해는 김창렬, 이왈종, 오치균, 강익중 등의 작가와 한예슬, 배수빈 등 배우 등이 참여해 2억 1000여만 원의 수익금을 올렸다.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수익금의 절반을 한국 메세나 협의회에 기부했다.

최근에는 도네이션의 대상이 사람에서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로 확장되기도 한다. 지난 1월 말에는 북한의 연평도 폭격 이후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겨진 반려동물을 위한 기금 마련 전시가 사진작가들을 주축으로 마련됐다.

주최는 (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대표 임순례, 영화감독)였지만 이상엽 사진작가가 기획한 <연평도 사태 후 남겨진 반려동물 사진전- 사라지다, 남겨지다> 전. 이 작가 외에 김성룡, 성남훈, 이치열, 최항영, 최형락 등의 사진작가와 언론사 사진가 동참했다.

섬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며 줄에 묶인 채 굶주림과 공포에 떠는 동물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3일 만에 2만 명이 서명하며 연평도 사태에서 망각되었던 반려동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 동물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전시는 임순례 감독과 이상엽 작가가 만나면서 구체화됐다.

"벌거벗은 채 절규하며 달리는 소녀의 사진이 베트남전 종식에 일조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사진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고 말한 임순례 감독은 이 작가에게 전시 기획을 요청했다.

행복나눔 아트페어에 출품된 최미연의 'In my city' 2010
카라는 엄동설한에 연평도의 파괴된 집 사이를 오가며 개와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나눠주는 동안, 작가들은 카메라에 반려동물의 현 상황을 바삐 담아냈다. 사진 속 연평도 반려동물의 상황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앙상하게 갈비뼈를 드러낸 것은 예사다. 폐허가 된 집의 잔해 한가운데서 넋이 빠져 있는 백구(최형락), 폭격으로 생겨난 벽 사이의 구멍을 헤집고 나오는 고양이(이치열), 바짝 마른 몸으로 겨우 몸을 가누고 눈길 위에 서 있던 어미개(이상엽). 이는 순수한 작품 활동이라기보다는 현대 예술가들의 현실 참여 방식의 하나로 읽힌다.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참여에 민감한 작가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쪽이다. 자기가 찍는 사진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데다가 모든 피사체나 이야기가 사회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나 약자들에게 빚지고 일방적으로 그들에게서 빼앗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자각한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도네이션 전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엽 작가의 설명이다.

결과로만 보자면 이번 전시의 성과는 좋지 않다. 50만 원에서 100만 원에 이르는 작품의 가격이 부담스러운 탓인지 겨우 두 점만이 팔렸다. 그림을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기부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온라인에서의 모금은 예상보다 많아서 전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에 다양한 기부문화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도입된 도네이션 전시. 그 역사는 겨우 10여 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연말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도네이션 전시의 수익금이 애초 의도와 달리 NGO단체의 운영자금으로 전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상엽, 연평도의 반려동물
이런 문제점은 작가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본래의 취지를 살린 도네이션 전시가 더욱 활성화되려면 기금의 투명한 사용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이상엽 작가는 국내에서 도네이션 전시 분위기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예술계의 팔방미인인 델피르의 사례를 높이 평가하며 도네이션 전시에서의 하나의 방향타로 제시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진 편집자인 델피르는 최근까지 주도적으로 도네이션 전시를 해왔다.

매년 앰네스티를 위한 캘린더를 만들고, 캘린더가 나오면 참여 작가들의 사진전을 열면서 캘린더와 오리지널 프린트를 따로 판매했다. 사회 지도층이나 유명인사들은 이런 전시에서 적극적으로 컬렉션 했는데, 이를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것 같다." 전시의 기획 주체와 작가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부 문화에 대한 성숙한 분위기 형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치열, 연평도의 반려동물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