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듣는 한국문화 (5) 거리의 소리문명개화 알린 기차소리서 음향대포 소리아카이브까지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극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미 소리가 점점 커진다. 한 철 동안 반드시 암컷 매미를 만나야 하는 수컷 매미의 입장에서는 죽기 살기다. 온몸을 쥐어짜서라도 자동차와 포클레인을 넘어서는 음량을 내야만 한다. 도시의 소음이 문제다.

지난해 경찰이 '음향 대포' 도입을 검토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리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청력의 한계를 넘는 소리는 고막과 심장을 손상시킨다. 정신적 고통도 심하다.

무기의 형태로 가공된 소리만이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매미 입장에서 보자면, 도시의 환경이 바로 전장이다. 우리에게도 거리는 점점 피곤해진다. 거칠 것 없는 자동차 소리, 포효하는 공사장 소리, 가게마다 한껏 틀어놓은 유행가 소리가 무례하게 귀를 때린다.

오늘도 거리의 소리는 전쟁 중이다. 그리고 매미처럼, 우리의 고막과 심장, 그리고 정신도 분투 중이다.

거리의 소리, 문명을 만나다

"실로 현대의 문명은 소리의 문명이다. 서울도 아직 소리가 부족하다. 종로나 남대문통에 서서 서로 말소리가 아니 들리리만큼 문명의 소리가 요란하여야 할 것이다." -이광수, <무정>(1916) 중에서

도시의 소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화와 함께 '들어왔다.' 기차와 시계, 유성기 등의 서구산 근대 문물은 기계적 소리로 귀를 사로잡았다. 계몽주의자들은 문학을 통해 이 소리를 대중에게 전파했다. "기계 소리는 계몽의 당위성과 짝패를 이루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위력적인 기차 소리를 문명개화의 청각적 이미지"로 썼다.(<소리가 만들어낸 근대의 풍경>)

새로운 소리들이 거리를 뒤덮었다. 자동차 소리와 인력거 소리가 뒤엉켰고, 모던 걸의 '송곳 굽' 소리와 모던 보이의 지팡이 소리가 서로 박자를 맞추었다.

1920년대 확성기의 개발은 획기적이었다. "말하는 이의 음성을 오십 배나 확대"하는 이 신문물은 소리가 거리를 호령하는 것을 도왔다. 임태훈은 논문 ''소리'의 모더니티와 '음경(音景)'의 발견'에서 "확성기의 고음이 일상적 소리의 배치를 압도했다"고 말한다.

큰 길은 물론 골목길과 집안까지 파고드는 이런 기술은 불특정 다수의 주의를 끄는 일에 유용했다. 거리를 대상으로 한 선전이 활발해졌다. 정부는 확성기로 납세를 명령했고, 가게들은 구매를 권했다. 정치권력과 소비자본주의의 의도가 행인과 동행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의 역사는 대중의 일과를 규율하는 신호음들을 낳았다. 일제는 1908년부터 정오를 알리는 오포를 쏘았는데, 이는 일본보다 1시간 빠른 한국에 일본의 시간을 이식하는 소리였다. 라디오가 보급된 후 규율은 더 강해졌다. 오포는 시보 방송으로 바뀌었다. 매일 아침 '궁성요배'(일왕이 지내는 궁성 방향을 향해 절을 함)의 사이렌 소리가, 밤에는 '황국신민의 서사'가 울려 퍼졌다.(백미숙, '라디오의 사회문화사', <한국의 미디어사회문화사>)

점령과 저항의 소리들

거리의 소리는 공공의 기억을 통해 이어진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운동 노래나 자정마다 숨통을 조인 통금 사이렌 소리가 오늘날까지 추억처럼 회자되는 건 그만큼 대중의 무의식에 깊숙이 뿌리박혔다는 뜻이다. 그 암울한 소리들을 대체할 다른 자율적인 공통의 소리가 없다는 것은 한국 역사의 비극적 단면이다.

박정희 정권의 '앰프촌' 사업은 거리의 소리가 어떻게 정치권력에 점령됐는지 잘 보여준다. 농어촌에 정부가 무상으로 확성기를 설치한 이 사업 결과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전국에 약 400여 개의 '앰프촌'이 조성됐다. 정권은 쉽고 빠르게 국정을 홍보할 수 있었다. 방방곡곡에 반복되어 울려 퍼진 경제개발계획의 업적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 이어졌다.

그러나 독재는 저항을 낳는다. 일방적인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의 소리가 거리를 메운 적도 있다. 1980년 5월 20일 광주 금남로에 모인 택시와 버스 200여 대가 동시에 울린 경적 소리는 민주화운동의 의지를 널리 알렸다.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여름에는 대중의 함성이 거리로 나왔다. 자동차 소리에 눌리고, 휴대전화 속에서 맴돌던 사람의 소리들이 대로에서 서로 만나고, 합쳐지고, 퍼져 나간 이 사건은 새로운 광장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다. 2008년 촛불집회 역시 현대 도시에서 소외되었던 대중의 소리가 거리를 향해 분출된 사례였다.

한국적인 거리의 소리는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거리의 소리는 뭘까.

광운대 교양학부 강사인 임태훈은 "걸그룹의 최신 유행가를 최대한의 볼륨으로 틀어놓은 통신사 대리점의 소리"를 꼽았다. 한국사회 자본주의의 첨병들이 합쳐진 소리다.

소리 조각가 김기철은 "너무 많은 소음"을 듣는다. "주말의 신촌을 예로 들 수 있어요. 가게마다 틀어 놓는 소리들 때문에 엄청나게 시끄럽죠. 동행과 이야기조차 할 수 없어요."

"한국적인 거리 소리는 하나도 없어요." 음향 전문가 김벌래의 평가는 냉혹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게다(일본 나막신)' 소리가, 중국에서는 체조를 하며 숨을 불어넣는 소리가 들리죠. 하지만 한국에는 어떤 소리도 없어요."

그만큼 문화가 부박하다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왜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고, 귀 기울여 듣고, 가지런한 소리로 마음을 고르는 생활 습관이 없을까.

도시환경연구센터의 전영옥 소장은 "한국의 도시계획에서 소리는 곧 소음이었다"고 지적한다. 삶의 환경을 조성할 때 소리라는 요소는 양으로만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임태훈은 "소음의 확산과 심화보다 극도로 단순화된 듣기의 습관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소리의 질과 결,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소리의 내용을 찬찬히 들으려는 시도는 점점 낯설어지고 있습니다. 듣기가 단순해지면 소리에 대해서도 제대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소리를 음량으로만 측정하는 귀에 마른 나뭇잎에 가랑비 떨어지는 소리, 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 계절마다 다른 계곡 물소리의 아름다움이 들릴 리 없다. 무딘 귀는 세상에 대한 무신경이다. 무딘 귀로는 삶의 환경을 돌볼 수 없다.

"소음공해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듣지 않을 때 생긴다." 캐나다의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는 환경 요소로서의 소리의 지형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재배치하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주창했다. 1960년대 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현대의 청각적 환경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거리 소리를 회복하는 게릴라전

소리 조각가 김기철은 작업에 담을 빗소리를 녹음할 때면 종묘에 간다. 사람 소리도 차 소리도 드물어서 서울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리 조각은 늘 정갈하다. 마음을 씻어준다. 좋은 소리에 깃들어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주의 깊게 듣는 노력과 주변을 돌보는 능력은 멀지 않다. 문지문화원 사이가 운영하는 웹진 'Sound@Media'는 작년 서울 곳곳의 소리를 채집하여 공유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 '서울사운드맵'을 진행했다.

이 소리 지도에는 '새벽 3시 반 홍대 놀이터 소리', '7월 오후 2시 길가에 앉아 오랫동안 울었던 아이의 소리', '가단조의 쓰레기 수거하는 소리' 등 그간 일어난 일들이 그득하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소리들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은 조금 특별해졌을 것이다. 귀를 쫑긋 세워 스쳐 지나가던 일과를 다시 들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을 잠시나마 온전한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이런 경험은 광화문의 음향 대포와 신촌의 무차별적 호객에 대항한 신종 게릴라전인지도 모른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