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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흔적 담은 오늘의 사진
[2010 SKOPF 사진전]
KT&G 상상마당 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채승우, 이선민 전시
입력시간 : 2011/03/10 01:03:47
수정시간 : 2011/03/10 01: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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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흔적'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탁월한 매체이다. 나는 흔적들을 사진의 프레임 안으로 옮기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채승우, '작가 노트' 중

KT&G상상마당의 2010SKOPF(한국 사진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작가인 채승우, 이선민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SKOPF는 전통성과 실험성을 고루 갖춘 한국 사진 작가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으로 3년째 진행되었다.

채승우, 이선민 작가의 프레임에 담긴 한국사회의 흔적은 통렬하다. 기술적 역량을 뛰어넘은 통찰력 덕분이다. 전시작들은 오늘 우리의 삶을 추적하는 단서들이다.

채승우의 '농업박물관'

첫눈엔 합성이 아닌가 싶었다. 빌딩숲과 철조망에 둘러싸인 논, 벼 사이에 삐죽 서 있는 스파이더맨 인형, 길거리 화분에 심긴 벼들…. 채승우 작가가 찍은 논 풍경들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맥락은 엉뚱하고, 벼는 유난히 푸르러 보인다. 그러나 작가 자신이 손댄 것은 없다. 엄연한 현실이다.

'농업박물관' 연작은 서울과 주변 도시에 있는 체험용 논들을 소재로 삼았다. 작가는 종로구 세운초록띠공원, 서초구와 강남구를 통과하는 양재천, 서대문의 안산도시자연공원, 충정로의 농업박물관 등 15군데의 기형 논들을 찾아 다니며 그곳의 관습과 풍물을 찍었다.

봄에는 모내기 행사가, 가을에는 추수 행사가 벌어졌다. 가끔 풍악이 울려 퍼졌지만, 보통은 차 소리가 요란했다. 각양각색 허수아비들은 본분을 잊은 채 행인들의 기념 행위에 동원됐다.

이 논들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채승우 작가는 전통 재현 행사를 다룬 이전 작업들을 통해 "한 사회가 전통을 재현하는 일은 그 사회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잃어버렸는가를 말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따라서 이들 재현된 논은 "우리가 농업과 농업 문화를 잃어가고 있음과 그 잃어버림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진행되는 각종 체험 행사는 한국인이 농경 민족이라는 전설을 지속하는 의식과도 같다. "근대화 이후 세계화 과정을 겪으며 우리 사회가 줄곧 제기해 온 정체성 문제"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응책의 효험을 측정하는 데에는 이 논들에 행사가 아닌 일상이 끼어드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방치된 논을 찾는 사람들은 그 스스로도 중심에서 밀려난 인생처럼 보인다. 한낮에 딱히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산책을 하거나 앉아 쉬고 있다. 어떤 이는 소 모형 아래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한다.

그런 모습들을 작가는 뒤에서 바라 봤다. 처지가 쓸쓸하다. 급변하는 사회의 주변에서 과장된 제스처로 상상된 논과 설 자리 없는 부적응자들이 상실감을 매개로 만난다.

강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채승우 작가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이며 모순적인 현실이 전통과 역사,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매우 기묘한 이미지로 실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운상가가 철거된 자리에 들어선 세운초록띠공원에서 거둔 벼는 종묘의 제사에 쓰인다고 한다. 이 착종된 순환 고리가 '농업박물관'에 함축되어 있다.

이선민 작가의 'TWINS'

처음엔 진짜 쌍둥이를 찍는 것으로 시작했다. 닮은 눈과 코를 나눠 가진 아이들이 같은 옷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생물학적 영향은 놀라웠다. 표정과 포즈까지 비슷했다. 커플룩을 입은 모녀의 관계에는 욕망이 개입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생김새만 물려준 것이 아니었다. 딸에 대한 기대와 이상을 투영해 옷을 입히고, 방을 꾸몄다. 공주풍 화장대를 놓았고, 벽면 가득 책을 꽂았다.

그리고 이선민 작가 자신이 11살 난 딸과 함께 지리산에 오르고 싶어진 4년 전, 'TWINS' 연작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카메라는 함께 야외 활동을 즐기는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을 쫓았다. 바다에서 나란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똑같은 등산복을 입고 산을 오르며, 함께 카누의 노를 저으며 삶을 '개척하는' 이들은 돈독한 동지 같다. 사진 속에서 생물학적 욕망은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쳤다면 'TWINS'는 독특한 가족 사진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이선민 작가는 이들 간 전파되고 학습된 취미와 취향의 계급적 특성을 아슬아슬하게 끌고 들어오는데, 이 점이 사진의 의미를 묵직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한 서재에서 함께 공부를 하던 부녀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옷과 근엄한 분위기, 책상 위 행정학과 행정법 책을 공유하는데 이 기호들은 명백히 상류층 문화를 가리킨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과 창턱에 놓인 상패들, 벽에 걸린 예수의 화상 등도 부녀의 사적인 순간을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단면으로 해석해볼 여지를 준다. 취미와 취향은 계급을 대변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최봉림 사진평론가는 이선민 작가의 'TWINS'를 "취미와 취향의 가족 사회학"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취향과 취미의 대물림은 가족의 위계질서와 부모의 경제적, 상징적 권력에 의한 일종의 문화적 강요다.(중략) 물려 받은 혹은 함께 나눈 취향과 취미는 가족이 처한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확대, 재생산하는 가치관이나 여기에 만족하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TWINS'의 장면은 그 과정의 특정 순간이다."

장장 6년에 걸친 연대기적 작업이다. 작가의 관찰이 축적된 단계를 따라가면 기어코, 눈이 트인다.

'2010 SKOPF' 전은 4월 25일까지 서울 홍대 앞 KT&G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린다. 02-330-6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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