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field seoul+neighboring effect' 전]'10월의 하늘', '파머스파티', 'RAir 콜렉션' 등 사례 소개

"임지현 박사님께. 오늘 제 기억에 가장 남았던 좋은 강의였어요. 모든 물체와 아무 것도 아닌 것에도 이유가 없는 것이 없고 그 물체가 아름다운 이유도 알게 되어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지난해 10월 30일 경북 칠곡 군립도서관에서 열린 강연이 사물을 보는 한 학생의 눈을 틔워 주었다. 삐뚤빼뚤하지만 정성껏 쓴 글씨가 흐뭇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사님들 굿이에요", "저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될 거예요", "특히 피보나치 수열이 제일 제일 재미있었어요" 고백이 이어진다. 방방곡곡에서 온 엽서들이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엽서들은 '10월의 하늘'의 후일담이다. '10월의 하늘'은 물리학자 정재승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제안한 강연기부 프로젝트이다.

"어린 시절 우주와 자연, 생명의 경이로움을 체험한 청소년은 자연을 탐구하는 삶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시읍면에서는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정재승 교수의 호소에 69명이 응했고, 이들은 10월 30일 하루 동안 전국 29개 도서관에서 강연릴레이를 펼쳤다.

당시 소통의 기록, 사람들이 트위터에 남긴 한 줄 한 줄과 강연을 들은 학생들의 소감,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찍은 하늘 사진 등이 갤러리 팩토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웃 효과'를 탐색하는 전시 ' x-field seoul+neighboring effect '의 일환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쉽고 빠르게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용자가 하룻밤 사이에 지구 반대편 사용자와 '절친'이 되거나 실시간의 간략한 대화에 친숙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소통 방식의 차이가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건축연구소 0_1 스튜디오 대표인 조재원 건축가는 곳곳에 잠복한 이 흥미로운 이웃들을 한데 드러내보고 싶었다. "공통의 관심사와 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역동적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동네와 도시의 씨앗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가 '기억으로 등록하고 망각으로 탈퇴하는 네트워크'라고 표현했는데, 그만큼 열린 구조라는 거죠. 누구나 포함될 수 있고, 사적인 접촉이 공적인 협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요."

몇 가지 사례가 소개된다. 디자이너그룹 액션스쿨의 '파머스파티' 프로젝트는 서울의 디자이너와 경북 봉화의 농부가 만난 경우다. 사과를 브랜드화하고 온라인 판매망을 구축한 이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새로운 이웃 관계가 생겼다.

사과 상자를 만든 이, 브랜드 로고를 인쇄한 이, 포장용 보자기를 만든 이 등 대규모 생산, 유통 체제에서는 익명이었던 조력자들이다. 전시 작품에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얼굴과 솜씨가 담겼다. 사과 한 알도 네트워크를 통해 입 속으로 들어간다.

뉴 미디어 디자인 스튜디오인 랜덤웍스의 협업 구조도 재미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디자이너, 공학도 등 각각 다른 전공을 가진 이들이 평등하고도 유연하게 결합한다. 느슨해 보이지만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고 자발적으로 모였기에 유기적인 관계다.

결과물에도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가치가 묻어난다. 이해를 앞세운 대형 조직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는 트위터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는 이웃들과 닮았다.

"유리병에 자신이 속한 공간을 적어 넣은 후 밀봉해 호주로 보내주세요." 호주 멜버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비주얼 아티스트, 조경 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된 X-Field는 세계 곳곳을 거쳐 한국까지 이웃을 채집하러 왔다. 한국 관객이 전시장에 비치된 유리병을 이들에게 보내면 거기 담긴 공기와 온기는 또 다른 지역에 전시되어 새로운 이웃을 만난다.

'RAir 콜렉션' 프로젝트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리병을 밀봉한 후 그것이 "공간과, 파리의 순수한 상태를 담고 있다"는 의미로 '50cc의 파리의 공기'라는 이름을 붙인 마르셀 뒤샹의 작업을 패러디한 것. 각국의 공기를 수집한다는 발상은 호주의 폐쇄적 문화를 상징하는 엄격한 세관법에 대한 조소이면서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스치듯 기꺼이 만나게 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X-Field가 경계를 넘나들며 고안해 낸 이웃 만들기 프로젝트들이 더 많다.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세요." 조재원 건축가는 가치를 공유하는 감성적 교류가 사회적 에너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긴,'10월의 하늘'에 참여한 트위터리안들만 보러 와도 이 전시 흥행은 보장된다.

' x-field seoul+neighboring effect '전은 서울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갤러리팩토리에서 3월 19일까지 열린다. 간 김에 주변의 카페mk2,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 헌책방 가가린도 방문해 보자. 이웃 잔치에 동참하는 의미로 함께 창문을 단장했다고 한다. 02-733-4883

조재원 도시건축연구소0_1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건축가가 왜 이런 전시를 기획했나.

"건축가는 눈에 보이는 건물만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새로운 도시를 상상하게 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전시를 빌미 삼아 새로운 이웃과 친해지고 싶기도 했고.(웃음)"

새로운 이웃의 특징이 뭔가.

"이웃의 범위가 넓어졌고, 서로 소소한 욕구를 나누며 접촉하는 것 같다. 그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접촉이 공동의 가치와 이어진다. 각자 좋아하는 일을 이해와 상관 없이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트위터 상에는 늘 그런 '기운'이 감돈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접촉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게 신뢰를 낳는 것 같다. 주변 사람과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가 더 소중해지고.(웃음) 흥미로운 건 각자 좋아서 하는 소소한 일들이 새로운 사회적 현상, 경제구조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랜덤웍스나 파머스파티가 그 예다. 근대적 시스템과 다른 사회와 시장이지 않나.

외국에서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소비 행위들도 활발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한 웹사이트는 사용자가 제품 디자인을 제안해 다른 사용자들의 동의를 얻으면 그 제품을 만들어준다. 소비의 질과 소비를 둘러싼 관계가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