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양산박 무대에… 한국와 일본 '사이' 메워보려는 시도

3.1절로 시작되는 3월 한 달은 매년 반일 감정이 극에 오르는 달이다. 이 시기만큼은 예전의 일본제국주의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일본스러운' 모든 것이 미움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일본에서 '신주쿠양산박'이 돌아왔다. 재일교포 연출가 김수진 대표가 이끄는 극단 신주쿠양산박이 지난주 오태석 작의 <도라지>를 올린 데 이어 이번주부터는 재일교포 작가인 유미리의 <해바라기의 관>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서툰 한국말보다는 일본말이 능숙한 그와 신주쿠양산박이 이 시기를 택해 내한한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처럼 '사이'에 있는 연극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사이'를 메워보려는 이유에서다. 그의 이런 의도는 이번에 공연되는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미리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해바라기의 관>은 요코하마에 남은 3명의 가족을 모델로 하여, 와해된 가족의 일상을 조명한 자전적 작품이다. 대학 수험을 앞두고 정신적 불안을 겪는 오빠, 유년의 상처를 씻지 못하는 여동생, 밤마다 집 나간 어머니의 편지를 읽게 하는 아버지 등 등장인물들은 모두 고독한 존재들이다.

특히 이 작품은 한국어를 잊어버린 재일동포 청년과 한국인 여자 유학생, 재일동포 소녀와 일본인 청년 등 두 쌍의 남녀를 통해 삶과 죽음의 드라마를 보여주며 재일동포의 정체성 문제를 넘어 모든 인간의 보편적 고민을 다루고 있다.

"유미리 작가가 처음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한 김수진 연출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재일교포의 모습들이 재일교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모습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하며 "재일교포로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펼쳐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주쿠양산박이 일본과 한국에서 가지는 의미는 바로 이 재일교포문화라는 점에 있다. 도쿄의 신주쿠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신주쿠양산박은 극장과 야외 공간의 경계에 있는 텐트에서 공연을 하는 '텐트연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연극적 특성도 대사 위주보다는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연극을 선보이며 일본 현대연극의 계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른바 '경계의 연극'을 보여주고 있는 것.

김수진 연출가 역시 일본에서 20년 넘게 신주쿠양산박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도 귀화하지 않은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귀화한 축구선수 이충성이나 격투기선수 추성훈 등에 대해 여전히 비난하는 여론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귀화하지 않았을 때에도 한국사회는 그들을 '우리'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수진 연출가는 "이처럼 재일교포문화는 한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이'의 문화"라고 재차 강조하며 "일본도 귀화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앞으로도 귀화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을 위해 내한하는 유미리 작가는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영화 <가족시네마> 특별 상영회와 연극 <해바라기의 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 등 바쁜 일정을 이어간다.

경계인들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하는 이번 연극은 9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