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ㆍ공연장ㆍ호텔서 즐기는 색다른 오페라 영상

평일 저녁의 상영관은 다소 한산했다. 수 개의 상영관 중 영화가 아닌 타 장르가 상영되는 곳은 단 한 곳. 공연 시작 시각과 비슷하게 저녁 8시가 되자마자 스크린을 제외한 모든 빛이 차단됐다.

본래 영화가 상영되던 이곳은 곧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의 객석이 되었다. 영상 속에서 카메라가 객석에 앉은 이들을 훑자, 메트 관객의 표정이 한눈에 읽힌다. 공연을 기다리며 객석을 둘러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오페라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 자리한 단원들 사이로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1976년부터 메트의 예술감독으로 자리해온 스타 지휘자는 현란한 손짓으로 오케스트라와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레바인의 땀방울과 표정, 단원들과의 교감까지도 영상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지난주 수요일, 오페라 영상이 상영된 서울 압구정 CGV의 광경이다.

이처럼 스크린을 통해 메트의 최신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2009년 9월부터 메가박스에서 연속으로 상영한 이후 지난해 12월부터 압구정 CGV로 옮겨왔다. 올해 12월까지 매달 한 편씩 상영하고 있으며, 이달 18일부터는 호암아트홀에서도 상영이 시작된다.

스크린에 빠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
이들 영상은 메트에서 직접 제작한 공연실황 영상으로, 2010/2011 시즌 실황의 경우 전 세계 1500여 개 극장에서도 상영 중이다. 지난 시즌, 전 세계 800여 개 상영관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당시 45개국에서 220만 명이 관람했다. 굳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영상으로 최신의 메트 공연실황을 볼 수 있게 됐다.

영상 속엔 공연실황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막간에 공연과 똑같이 인터미션을 주는가 하면, 실제 공연에서도 볼 수 없는 무대 교체 장면이라든가, 주역 배우들의 인터뷰가 곁들여진다. 무대 위의 카메라 워킹도 현장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소품까지도 볼 수 있게 생동감 있는 촬영에 포커스를 뒀다.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상에는 한글 자막도 제공된다.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를 관람한 김소연 씨(32, 프리랜서)는 "25,000원이면 영화관람비보다 비싸지만 메트의 최신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영상이라는 한계를 예상했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마치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현장에서도 볼 수 없는 백스테이지 영상과 인터뷰가 있어 흥미로웠다"며 소감을 밝혔다.

새로운 관람방식에 매력을 느낀 이들은 다시 극장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몇 달간 압구정 CGV의 관람객 수도 큰 폭은 아니지만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영상을 통한 오페라 관람의 시초는 126년 전통을 가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이었다. 2006/07시즌에 신임 총감독으로 임명된 피터 겔브는 2006년 9월, 시즌 개막작 <나비부인>을 맨해튼 타임스퀘어와 링컨센터 플라자에 생중계 방영했다.

호암아트홀 내부 전경, 무대(폭 16미터)와 거의 같은 크기의 스크린의 설치된다./사진제공=호암아트홀
교통 통제한 거리에 대형 스크린과 음향시설, 650개의 좌석과 입석 관람대를 설치하자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피터 겔브는 이어 인공위성을 통해 2006/07시즌 공연 6편을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의 영화관으로 생중계했고, 지난해 가을에 시작된 2010/2011 시즌 오프닝 공연은 타임스퀘어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2000여 명의 관객이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을 무료 관람했다. 이들은 공연장 안의 3000여 명 관객과 함께 시즌 첫 공연의 감동을 함께 나눴다.

서울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감상하기

압구정 CGV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매달 한 편씩 2010/2011 시즌 오페라를 선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오는 18일부터 호암아트홀에서 '메트 오페라 온 스크린'을 만날 수 있다.

라인업은 같지만 영화관과는 다른 공연장 분위기에서 즐기고픈 이들이 이곳을 찾을 듯하다. 2010/2011 개막작인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 글루크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을 올해 11월까지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호암아트홀 측은 "아직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객석의 절반 이상이 채워졌다"면서 "특히 이번 시즌은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의 메트 데뷔 40주년인 기념비적인 해로 특별한 프로덕션을 만나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에서도 메트 오페라 영상에 브런치와 오페라 전문가들의 해설을 곁들인 '메트 오페라 브런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3월부터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달 6~7회 연중으로 진행된다. <아이다>, <라인의 황금>, <카르멘> 등 총 17여 작품이 관객들을 찾아간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KBS 1FM '장일범의 가정음악'의 진행자인 장일범을 비롯해 클래식 칼럼니스트 유정우, 오페라 전문가 이용숙 등이 영상 중간마다 설명을 곁들인다.

<사진제공=(주)에이치엠엔>


안나 네트렙코가 출연하는 도니체티의 '돈 파스콸레'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