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강박증 발레리나 묘사로 춤영화의 진부함 극복
덕분에 일부 계층의 향유물처럼 여겨졌던 발레도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까지 춤영화들이 관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제까지 춤영화들이 놓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블랙 스완>은 왜 성공했나.
손쉬운 공식이자 족쇄 '청춘의 성장담'
춤을 추는 이들은 모두 젊은이들이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춤은 넘치는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춤은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또 춤은 끓어오르는 욕망과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어떤 젊은이들에게는 말이 필요없는 대화법이기도 하다.
이런 춤의 특성은 오랫동안 춤영화를 지배하는 공식에 그대로 스며들어 오랜 생명력을 과시했다. 1970~80년대의 대표적인 춤영화들의 주요 스토리는 어김없이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민, 도전과 좌절 등이 큰 뼈대를 이뤘다.
이런 춤영화의 클리셰(진부함)는 1990년대 이후에는 춤영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정서도 변해갔지만, 춤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라틴댄스나 브레이크댄스 등 단지 춤의 장르만 바뀌었을 뿐, 스토리 전개는 그대로 방황하는 청춘의 사랑과 도전기에 관한 것이었다.
때문에 한때 춤영화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춤영화라는 장르를 진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는 영화들도 종종 등장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최근까지도 춤영화의 관습은 여전히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허니>나 <유 갓 서브드> 같은 힙합영화를 비롯해 3D 기술로 무장한 <스텝업> 시리즈까지 청춘의 성장담은 끈질기게도 관객의 편견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춤영화 관습 깨는 발레영화
이런 춤영화의 전형을 극복하고 관객에게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춤영화들이 대부분 발레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춤 장르로서 발레는 청춘물에서 소비되는 춤들보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정치, 역사, 섹슈얼리티, 예술성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과 교차하면서 새로운 춤영화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터닝 포인트> 역시 <블랙 스완>과 여러 점이 겹친다. 촉망받는 발레 유망주였지만 임신과 함께 발레를 접고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한 사람과, 프리마 발레리나의 자리에서 내리막길로 향하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대로 <블랙 스완>의 극 중 어머니(바바라 허쉬)와 프리마 발레리나(위노나 라이더)에 닿아있다.
<백야>와 <빌리 엘리어트>, <왕의 춤> 같은 작품들은 춤영화가 춤의 기교나 사랑 타령뿐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배경이나 젠더의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텍스트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백야>에서 발레는 미국과 소련이 반목하던 냉전시대의 암울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매체였고, <왕의 춤>은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발레가 프랑스로 넘어와 어떻게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발레리노의 아름다운 도약이 인상적인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은 '남자는 권투, 여자는 발레'라는 젠더의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영화의 정치성을 압축한 부분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