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ONAL FLAG'
작은 모래 알갱이들은 국기가 되고, 국기들은 모여 거대한 만국기가 된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색 모래 국기들은 미세한 충격에도 들떠 뒤섞인다.

국기 설치 작업은 전시가 끝난 후 사라지고, 국기의 개별적인 형태들은 기록으로만 남는다. 국기로 상징되는 국가는 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해체되고, 흐트러진 모래의 무덤만 남는다. 주세균의 두 번째 개인전, 에서 선보이는 '파우더 시리즈'다.

알록달록한 색 모래와 베이비파우더를 이용해 그린 '만국기'는 국기의 본래 의미를 뒤집는다. 유지될 수 없는 재료로 그려진 국기들은 과거 '국가'가 가졌던 민족과 질서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모래 국기들의 혼합은 초국가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눈썰미가 좋은 관람객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국기'들은 그 '국기'가 아니다. 국기들의 심벌, 색, 면은 작가의 손을 통해 모르는 척 변형되어 숨어있다. 이는 국기의 본래 이미지를 뒤집는 또 하나의 장치이면서, 하나의 권력 이미지로 소비되는 '국기'의 변형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과정을 통해 국기가 가지는 힘의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엄격한 질서를 강요하는 국가를 극복하고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기호와 상징, 그리고 색, 면의 유희를 허용"하고, "국경과 문화를 넘나들며 타자를 이해해야 하는 현재 그 지점에서 접하는 생경함, 불가해성, 차이" 등을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의 작업이 던지는 화두에 주목해보자.

3월 17일부터 4월 10일까지. 브레인팩토리. 02)725-952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