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 개인전] 유년시절부터 모은 수집품, 미발표 작품 등 30년 작품세계 총정리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3월 24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구 작가가 5년 만에 다시 갖는 개인전으로 구성과 내용 등에서 이전 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진작품과 더불어 구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수집해온 물건들을 함께 전시해 지난 30여 년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했다.
회고전의 형식을 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컬렉션'으로, 구 작가의 작업들이 어떠한 컨텍스트(context, 맥락)에서 탄생되었는가를 살피게 한다. 작가의 삶, 작업과 함께 해온 수집품, 오브제는 작가의 혼이 담겨 있는 매개로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전시는 컬렉션의 과정, 특성에 따라 3개의 섹션으로 짜여졌다. 첫 섹션에는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들을 선보인다. 6살 때부터 간직한 것에서 청소년기, 성년기를 거치면서 국내외에서 수집한 것들은 작가의 작업이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주며 그의 작업세계에 보다 깊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어릴 때 낯가림이 있어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주변의 사물에 관심을 갖고 물건을 모았어요. 그런 사물들과 대화하며 소통을 했지요."
이처럼 '낡음'과 '이름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수집품에는 그러나 작가의 삶의 시간들이, 숨결이 배어있다. 구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워지는, 혹은 내용물이 빠지거나 안이 텅 비어있는 물건들에 자신만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두번째 섹션에서는 아직 발표된 적이 없는 1980년대 작가의 독일 유학시절 작업과, 귀국 후 작업했던 작품들을 모았다. 유학시절 여행을 하며 찍었던 스냅사진, 88서울올림픽 전후 한국의 모습을 기록한 이미지들은 프로젝션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주목되는 것은 사진 속 인물과 도시의 이미지, 메시지이다. 구 작가 사진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의 부재'인데 이 사진 프로젝션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얼굴을 가리거나 등을 돌리고, 몸의 일부만 클로즈업해 작가의 '부재의 미학'과 연결된다.
일련의 도시 사진들은 그 안의 사람들과 유리된, 또는 위압적이고, 시대와 조응하지 못해 황폐한 이미지들로 최근의 '도시' 관련 사진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타포를 앞서 함의해왔음을 보여준다.
백자, 탈, 곱돌 등은 작은 것의 소근거림에 귀기울여 온, 그리고 동양의 미에 줄곧 관심을 가져온 작가의 내면을 반영한다.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미학의 매개이기도 하다.
가령 '탈 시리즈'에서 탈은 인간 표정의 표상일 뿐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탈은 얼굴을 지우고, 이름을 지우고, 시간을 지운다. 탈 속에는 시간의 낡음이 켜켜이 쌓여 있다. 탈에는 작가 특유의 부재의 미학, 낡음과 이름없음의 미학이 담겨 있다..
백자는 구본창 작품세계의 '절정'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 낡고 이름없는 것들을 수집한 그의 심미안의 화살이 꽂힌 컬렉션이다. 백자는 드러내지 않는, 빈 프레임, 시간이 흘러 흔적만 남는 것들에 내재된 가치를 함축한 '텅빔'의 미학 자체이다.
이렇듯 구본창의 사진 세계는 '수집적 상상력'의 세계이다. 그의 수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내면적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대상물들은 마치 무작위적이며 권태로운 듯 나열된 것들이며 대체로 뒤편에서 소외당한 것들, 또는 사라져버림 운명의 것들이다. 이러한 대상물은 당시 나의 심경을 대변해 주며 또한 이 시대에 잊혀질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일부라 생각된다."(작가노트)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씨(서울산업대 교수)는 "구본창의 수집품과 그가 찍은 다른 사람들의 컬렉션은 작가의 '숨겨진 눈'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그의 '카메라의 눈'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이자 한 인간인 구본창의 삶과 작업의 세련되고 정제된 조화, 지속적인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무심코 잊혀지고 사라지는 우리의 일상, 평범한 삶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전시는 4월 30일까지 계속된다.
02-733-8449. 사진=구본창&국제갤러리 제공.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