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대학교 청소 노동자의 파업(11) 생존에 필요한 임금과 인간답게 일할 권리 찾는 과정 영화에 담아

모교에 갔다. 3월의 교정은 오랜만이었다. 날씨가 맑았고 새내기들의 얼굴은 풋풋했다. 막 강의가 끝났는지 건물마다 가벼운 발걸음과 높은 웃음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만치 학교의 상징인 파란 색 옷을 맞춰 입은 무리가 있었다. 좋은 시절이다, 평일인데 엠티를 가나?

흐뭇하게 돌아보았다가 겸연쩍어졌다. 학생들이 아니었다. 빗자루와 걸레 대신 피켓을 든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었다. 용역업체와의 임금 협상이 결렬되자 "학교가 직접 해결해 달라"고 나선 참이다. 이들의 요구는 법정 최저 수준인 4320원의 시급을 시급 5180원으로 올려달라는 것. 현재 임금은 월 80만~90만 원 정도다.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함께 파업하는 중이다.

"최저 임금 말고 생활 임금을 달라" 교정 곳곳에 이들이 직접 쓴 대자보가 붙었다. 임금은 문제의 단초일 뿐이다. "휴게 공간이 너무 춥다. 따뜻한 방이 그립다"는 문장에 마음이 싸해진다. 학교 다닐 때 강의실이 추웠던 기억은 없다. 교정에 얼마나 많은 사각지대가 있었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논의는커녕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청소 노동자에게 사람들의 시야 밖에서 활동하는 것은 의무다. 이들의 손길로 유지되는 번쩍번쩍한 건물에서도 빗자루와 걸레는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흉물이다. 자연히 청소 노동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활약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머물 공간도 절실해질 텐데, 처음부터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 시설을 계산에 넣은 건물은 거의 없다. 화장실 '청소 도구함'의 닫힌 문 뒤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여러 번이다.

어느 날엔 큰 건물 화장실 구석에서 홍길동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버린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쩡한 구두가 신문지로 꼼꼼히 덮여 있었다. 청소 아주머니가 퇴근 후 갈아 신고 갈 요량으로 숨긴 것이 분명했다. 구두를 둘 곳조차 마땅치 않았던 것일까.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화려한 장식이 달린, 그 신데렐라 구두를 보고 처음으로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합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는 미국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는다. 제목에서 '빵'은 생존에 필요한 임금, '장미'는 인간답게 일할 다양한 권리다.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직업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과 인식도 중요한 노동환경이라는 뜻이다.

<빵과 장미>는 이 점을 청소 노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가령, 청소를 하던 주인공들은 자신을 무심히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유니폼은 우리를 안 보이게 만든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실제 청소 노동자들이 출연했고, 영화 촬영 후 그들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이번 청소 노동자 파업은 그 무대가 내로라하는 명문 사학이라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 대학들은 "당사자는 청소 노동자와 용역 업체"라며 한 발 물러나 있다. 하지만 결국 더 '경제적인' 용역 업체를 선택하는 권리도,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킬 수 있는 힘도 대학에 있다.

교정을 가로질러가는 시위 행렬을 보며 비로소 우리 학교에 저렇게 많은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었구나, 싶었다. 강의실에서는 여전히 양심과 상식, 인권과 정의가 논해지고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북적였다. 지저분한 주변에는 아랑곳없이 저마다 취업 준비 서적에 코를 박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숨이 막혔다. 3월인데 교정에는 꽃샘추위가 기승이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