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일본 대지진과 교과서 문제(12)독도 영유권 주장, 휴머니즘 차원 구호 모금 활동에 찬물

"아무리 한국에서 도움을 받고 고마워한다 해도 일본 또한 독도를 접을 길은 없을 테죠. 그래도 당분간만큼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중순 일본 열도가 뒤집혔다. 강도 9에 가까운 초강력 지진이 섬을 휩쓸었고 수 만 명의 희생자가 속출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쓰나미에 쓸려가는 자동차와 천장이 주저앉는 공항 등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모금과 구호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다른 종류의 게시물들이 같이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 독도 영유권을 외치는 일본 정치인들의 영상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수 김장훈이 일본 구호 계획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 독도 문제였다.

"나 또한 매일 마음이 무겁다…이번 일에 아무리 마음이 아프고 보듬어 드린다 해도 또 이것과 상관 없이 독도나 동해 문제는 계속 치열하게 해나갈 것이다. 이번 일은 휴머니즘이고 독도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을 향해 '당분간 한국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일본 교과서 검정 문제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한창 한국의 온정 어린 손길을 받던 일본은 3월 30일, 내년부터 사용하게 될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표현을 삽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본에 돈을 보내느니 다 태워버리겠다', '휴머니즘에서도 일본은 제외' 등 분노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뭉치면 살고, 나머지는 죽는다?

빠르게 진행되는 세계화는 대한민국의 뿌리를 이루는 민족주의와 점점 더 자주, 더 세게 충돌하고 있다. 허울뿐인 순혈 국가라는 타이틀에 더이상 자랑스러워할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환상은 영양제 주사처럼 중독성이 강해 쉽게 비난할 수가 없다.

일상의 지루함에 매몰돼 있다가도 민족이라는 강력한 당위만 제기되면 불 같은 분노와 폭풍 같은 성취감이 한바탕 쓸고 지나가며, 이 사회의 감정적 노폐물들을 클렌징해주니 어떻게 이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국내 지식사회에서는 민족주의의 신화를 벗기려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들 중 가장 최전방에 서 있는 이는 한양대학교 임지현 교수다.

1999년 펴낸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에서 그는 민족이란 '근대 이후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계급제 사회가 무너지기 전 피지배층은 민족과 관계 없이 자신들에게 관대한 지배층을 더 좋아했으므로 민족주의 개념 같은 것은 생겨날 토양이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제 3계급들이 혁명을 주도하면서 농민들을 포섭하기 위해 민족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민족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엄청난 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가치의 절대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언제든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여의봉이다. 독도 문제 앞에서는 줄여야 할까, 늘여야 할까?

"혈통의 민족이란 울타리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가치와 사람들을 배제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뭉치면 힘이 있다. 그래서 하나가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하나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는 충분한 고찰이 필요하다. 내가 속한 '하나'가 얼마나 많은 개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일본은 김장훈의 말대로 '얍삽한' 국가다. 그러나 그것이 지진에 가족을 모두 잃은 개인을 위로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차라리 '일본은 부자니까' 돕지 않겠다는 것이 더 인도적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