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0-4'
식물에서 '욕망의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 아니, 식물에게 순수와 무욕의 이미지를 강요했던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꽃망울과 물을 한껏 품고 부풀어 오른 과실, 해를 탐하려 기울어진 줄기와 땅 끝으로 뻗고자 하는 뿌리. 여태, 어떻게 식물은 '무욕의 상징' 이었을까. 꽃과 푸른 잎을 태초의 순수로만 그렸던 문학 작가들은 이 전시를 보고 이마를 칠 것이다.

작가 이미숙의 식물 그림은 그 색채부터가 기존의 식물 그림과 다르다. 맑은 초록, 연두, 노랑, 분홍 일색이었던 청순한 식물 그림의 틀을 벗어나 보라, 빨강, 검정, 짙은 녹색, 자주로 그려진 식물들은 '육식 동물'을 마주한 듯 그로테스크하다.

평론가 조광제는 이를 두고 "끈적끈적한 색채"라고 말했다. 작가의 식물들은 더 이상 누군가 꽃가루를 옮겨 주어 누구의 기쁨을 위해 열매를 맺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절정을 위해 열매 맺기를 '탐하는 듯' 보인다. 지나치게 생생하고 현실적인 식물의 이미지는 오히려 식물을 식물처럼 보이지 않게 만든다.

한지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작가의 작업 방식도 눈에 띄는데, 식물에서 나온 한지와 식물의 욕망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컬러감의 아크릴 물감이 만나 작가의 주제를 다시 한 번 전달한다.

식물의 인상적인 형태를 굵은 선으로 따와 어둡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린 그림들은 마치 식물의 속성을 찍은 '엑스레이' 같다.

전시는 갤러리 더 케이에서 4월 13일부터 4월 19일까지 이어진다. 02)764-1389.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