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비틀고, 뒤집어 본 일곱 작가들의 미술적 대답

이광기, '인식의 부재', 2011
한 남자가 신문을 펼쳐 든다. '급식대란, 대학 캠퍼스 덮쳤다'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남자는 생각한다. '학교 식당이 며칠 놀겠군.' 한 장 넘기니 '정부, 신공항 불질러 놓고 구경만' 한단다. '애매한 공약은 지켜도, 안 지켜도 욕 먹는다'며 남자는 킥킥거린다.

신문 위에 독자의 반응을 자막 처리한 이광기 작가의 영상 작품 '인식의 부재'는 오늘날 신문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문은 늘 진실일까? 신문은 갑론을박과 패러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심지어 때론 신문 특유의 정색한 태도와 경직된 논리가 농담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은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다. 신문을 둘러싼 수많은 비판과 풍자는 역설적으로, 신문에 대한 견제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숱한 주장과 해석들이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신문을 인용하고, 신문으로부터 파생된다.

사회적 인식과 기대치의 변화, 매체와 정보의 지형 변화 속에서 오늘날 신문은 무엇이고, 어떻게 경험되고 있을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대안공간 충정각에서 열리고 있는 <신문新聞-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차가운 시선> 전은 이에 대한 미술의 대답이다. 제55회 신문의 날 하루 전부터 시작했으며 신문을 소재와 주제, 혹은 놀이터나 일터로 삼는 7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문에 실린 보도 사진을 비트는 서평주 작가의 재주는 놀랍다. 사진에 그림을 덧붙이고, 사진 설명을 군데군데 수정해 완전히 다른, 혹은 완전히 정통한 뜻을 만들어낸다.

서평주, '가장 멋진 감옥', 2010
9.11 테러 이후 다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폐쇄되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다시 개방되었음을 알리는 기사 '왕관 속에 사람이...'에서는 '왕' 자를 빼고, 사진 속 왕관 부분에 갇힌 듯한 사람을 그려 넣었다. 작품 제목은 '가장 멋진 감옥.' 귀여운 말장난인데, 볼수록 의미심장하다.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보안을 강화하고 타자를 배척하면서 스스로 가두는 격이 되어 버린 미국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연미 작가는 연필 하나로 왁자지껄 말도 많고, 고집도 세고, 어깨에 힘도 잔뜩 들어가 있고, 무뢰한 같은 신문 지면을 평정해 버린다. 글자들 사이를 이어 문장을 하나의 물결 그림으로 만들어 버린다든지, 시끄러운 지면 구성은 아예 검게 덮어버리는 기술을 구사한다.

그러면 안개나 어둠 속에서 몇 개의, 혹은 결정적인 하나의 이미지만이 떠오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다양한 현상과 사건, 사고를 특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의 폭력을 드러낸다.

신문은 세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창이 아니다. 신문은 오히려 세상의 단편들을 덕지덕지 모아 놓은 콜라주에 가깝다. 전채강 작가의 대형 회화 '오늘의 이슈'는 신문이 전달하는 현실의 풍경이다. 강가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와 포크레인, 다이빙하는 사람들과 사격 표지 등으로 뒤죽박죽이다.

연미, 'International', 2009
자연스럽게 4대강 사업, 새만금 간척 사업,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의 이슈가 연상되는 이 작품은 동시에 끝없이 팽창하려는 현대사회의 히스테리를 담고 있다.

신문의 역사가 긴 만큼, 일상 속 신문의 쓸모도 폭 넓어져 왔다. 깔고 앉을 것이 마땅하지 않을 때는 돗자리가 되며, 노숙자들의 겨울 밤을 지켜주는 이불이거나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들의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빛 바랜 신문들을 이어 붙인 조혜경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심지어 시간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노순택 작가의 'D일보 사기판촉사건의 전말'에서 드러나듯 신문이 사람들의 일상을 순회하는 통로에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출동한 경찰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남녀가 등장하는 이 한 장의 사진은 J일보 대신 D일보를 구독할 것을 권유하던 신문배달원과 그가 J일보에서 나온 줄 알고 문을 열어주었던 아주머니 사이의 실랑이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신문의 확산은 이렇듯, 불상사란 말인가.

평생 신문을 일터 삼은 박재동 화백의 고민은 누구보다 깊다.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고른 시사 만화들이 그 고민을 대변한다. 1992년에 그린 '아무개 신문사 아무거시 화백'에서 박재동 화백은 당시 신문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 놓는다.

조혜경, 'Stream of Time', 2002
아무개 신문사의 아무거시 화백은 정부, 여당, 경찰, 재벌이 언급되는 만화는 그릴 수가 없다. "만평다운 만평을 그려보겠어"라고 굳게 결심하지만 번번이 국장에게 저지당하고 안기부 언론담당자에게 "지켜보고 있다"는 전화까지 받는다. 불안에 사로잡힌 그는 다시 가장 '안전한' 강도 살인사건, 납치 인질 사건, 여의도 질주 사건만을 찾는다.

우리가 아침에 배달되어 온 신문을 펼치고, 가판대에 꽂힌 신문들을 훑어볼 때마다 이런 맥락이 함께 웅성거린다. <신문>전은 신문의 공명정대한 외양을 옆에서 보고,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본다. 전시는 5월 6일까지. 02-363-2093


박재동, '한통노조만평', 1995
전채강, 'Today's issues', 2008
노순택, 'D일보 사기판촉사건의 전말', 2007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