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개인전 '윤리' 주제로 관객과 함께 만드는 열린 결말의 퍼포먼스 진행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건 미술로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남자의 이야기가 끝난 후였다. '관용'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한 미술가의 이야기.
사회에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그려온 미술가는 관조적인 태도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가가 자신이 그린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았던 건 사적 감정이 그림을 망칠까봐 두려워서였지만, 주변에서는 그가 과연 그들의 삶을 제대로 알고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 했다. 비판이 높아지건 말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던 화가는 돌연 잠적해 버렸다.
"그가 붓을 꺾어 버렸는지, 아니면 원대한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죠.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드디어 다시 나타난 미술가는 8점의 추상 회화를 선보입니다. 제목이 '관용'이었죠."
남자의 눈은 정말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듯 아득하다. 회색인지 베이지색인지, 먼지색인지 모를 정도로 모호한 색에서부터 강렬하지만 너무 노골적이어서 어딘가 유치해 보이는 빨간 색까지 각각의 색들이 캔버스를 뒤덮은 모노크롬 회화들이었다고 한다. 물감의 색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 성질을 존중해주었다는 점에서, 미술가는 그림에 관용의 의미를 적용한 것 아닐까요? 남자가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런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제목은 '사람 객관적-평범한 예술에 대해'. 위의 이야기는 그중 '표현에 대한 소고-개념을 미술화하려는 의지'다.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김홍석 작가의 개인전 <평범한 이방인>의 일부다. 전시장에는 총 다섯 명의 이야기꾼이 있다.
관객들이 찾아가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이는 의자를 미술화하려는 미술가에 대해, 어떤 이들은 돌이나 물을 미술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꾼의 선에서 끝나기도 하고, 관객의 마음에 은근하지만 지속적인 진동으로 남기도 하며, 이야기꾼과 관객 사이의 합창이나 열띤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객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쩌면 이야기꾼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르다.
김홍석 작가는 왜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했을까. '윤리적 태도에 대한 소고-사람을 미술화하려는 의지'가 힌트를 준다. 이야기꾼의 말을 옮겨 보자.
이 퍼포먼스들은 미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작품은 이들의 만남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아니, 만남 자체다.
단지 재미를 위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건 어떻게든 관객에게 사랑받아 보려는 미술의 변명이자 유혹이기도 하다. 퍼포먼스의 내용은 곧 미술의 화두다. 일상에서 멀고 어렵다고 여겨지는 미술이 왜, 어떻게 추상화되는지 예를 들어 해설한 것이다.
그리고 실시간 질문이나 반박을 허용함으로써 관객을 미술의 공범으로 만들려는 음모이기도 하다. 김홍석 작가는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퍼포먼스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윤리'입니다.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특히 한국 관객들은 이런 방식의 전시를 매우 낯설어 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퍼포머에게는 '망가지라'고 주문했죠.(웃음)"
전시장에서 상설로 진행되는 퍼포먼스가 주 메뉴지만 4월 셋째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매주 금, 토요일에 진행되는 강연 역시 일부러 찾아 들을 만하다. 시인, 미디어 아티스트, 문화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강연자들이 지동설과 천동설, 진화론, 모듈 등 독특한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보인다. 세상에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이야기꾼은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낯섦에 대한 두려움만 떨치면 된다.
<평범한 이방인> 전은 5월1일까지 열린다. 02-733-8945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