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전 아트스페이스 풀 4월 26일까지
작년 한 해, 구제역이 퍼지자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산 채로 묻었던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연속된 재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잊는 것이 상책인가. ‘살처분’이라는 점잖은 조어는 사태의 끔찍함을 삼켜 버렸다. 생명은 처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간단히 뒤엎으며 재앙을 서둘러 봉합했다.
그리고 무덤마다 비석이 세워졌다. 이렇게 씌어 있다. ‘발굴의 금지.’ 가축의 사체를 묻은 땅을 3년간 파헤치지 못하도록 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소와 돼지의 죽음은 구제역이라는 병명과 한 자리에 묻힌 마리 수로만 남았다.
보다 못한 미술작가들이 나섰다. 생명을 다루는 이 ‘문명적인’ 분노하는 이들이다. ‘살처분’과 ‘발굴의 금지’ 같은 말의 타락은 곧 마음의 타락, 관계의 타락, 문화의 타락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작가 60명이 재앙을 기록하고 표현한 작품들을 모아 <발굴의 금지> 전을 열었다.
비판과 슬픔뿐 아니라 부끄러움과 속죄를 담은 작품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매몰지에는 소와 돼지뿐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이 묻혀 있다. 붉게 찍힌 소의 눈은 우리를 평생 지켜볼 것 같다. 연고가 없는 무덤들이 인간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증언한다. 구제역보다 더 큰 재앙은 그것을 망각하는 인간의 태도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