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14) 한복 출입금지?자국 전통의상 배척 이례적 사례로 국제적 망신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담은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아니, 신라호텔 측의 말이 맞다. 한복은 진심으로 불편한 옷이다. 셔츠에 바지에 양말, 2~3분이면 간단히 입을 수 있는 양장에 비해 한복은 정해진 룰도 많고 상황에 따라 입을 수 있는 기회도 제한돼 있다.

여성들의 한복은 더하다. 아무 때나 입을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어떨 때는 입기 싫어도 한동안 입고 지내야 하는 때도 있다. 생각해보라. 드라마에서 수많은 새댁들이 입었던 그 색동저고리와 부엌의 어색한 미장센을. 주방을 가득 메웠던 찌개 냄새 사이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빳빳한 새 한복의 위화감을.

우리 사회엔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암묵적인 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초상집에 갈 땐 검은 수트에 검은 넥타이, 첫 출근을 하는 직장인 남성은 투 버튼의 감색 정장 따위의 정형적인 코드 말이다. TPO는 위대하다. 그건 기본적인 예의이며 처세의 기반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이 코드가 흔들릴 때 사회는 위험을 알리고 제재를 가한다.

<100분 토론>에 파격적인 공연 의상을 입고 나온 신해철의 발언은 과연 위험하다. 첫 국회 등정에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타났던 유시민 의원은 (어떤 이들이겐) 또 얼마나 불온했나. 우리에겐 '뾰로롱~' 개그 소재로 친숙해진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한복 차림은 그 당성과 과격 발언을 생각하면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글쎄, 과연 그런가?

이미 이미지를 실추한 신라호텔은 최근 몇 년간 '전통 냄새' 빼기로 이번 사건의 발단을 마련했다. 이곳도 예전엔 꽤나 전통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이름부터가 '신라'였고, '한식당' 하면 또 신라호텔이었다. 당시 한식당 이름도 신라에 걸맞은 '서라벌'이었다.

신라호텔전경
그런데 2005년 전격 폐쇄된 서라벌 자리엔 중식당, 일식당, 프랑스 식당', 뷔페가 대신 들어왔다. 전통의 색을 빼가던 중 맞닥트린 이번 사건은 그래서 더 파장이 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보다 더한 망신을 당하게 됐다. AFP통신은 "한국의 최고급 호텔에서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지 못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며 이번 사건을 전했다. 이 소식은 곧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각국의 외신으로 퍼져나가며 자국의 전통을 배척한 이례적 사례로 소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이야기한다. 영화를 통해 이에 이바지해온 거장 임권택 감독은 우리 소리, 고전문학, 한옥, 한복 등의 소재를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 기여해왔다.

얼마 전에도 임권택 감독은 <달빛 길어오르기>로 한지의 대외적 홍보에 백한 번째 경력을 바쳤다. 또 국악계는 월드뮤직과 정통 국악의 양면에서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와 교류할 준비를 진행 중이다. 전통주는 와인과 경합을 겨루며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사건은 왜 한복이 세계 속 한류를 떠나 국내에서조차 대중적으로 보급이 안 되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한복에 대한 우리 내부의 여전한 편견 때문이다. 그런 편견 때문에 한복의 이미지는 국제적으로 실추됐고, 한복 한류에도 그만큼 타격을 입게 됐다.

어떤 단단한 방주도 내부의 조그마한 균열로 무너지고 만다. 이번엔 그 균열이 좀 컸다. 이번 일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적은 늘 내부에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