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옥', 김도언 '자전거', 장은진 '피서' 생각나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5월에 몰린 '날'들은 흩어진 가족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은다. 당신은 무엇을 입고 먹고 보고 들을 때 가족이 생각나는가?

작가들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유는? 당신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한옥에서의 한 때

소설가 한강 씨는 최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소설 일일연재를 앞두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밀도 높은 작품을 쓰는 것으로 정평난 한 씨여서, 그의 일일연재는 꽤 신선하게 들린다. 5월 셋째주부터 시작해 석달 쯤 연재할 계획이라고. 지난해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연재가 끝나면 하반기쯤 책으로 묶을 예정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말씀 드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조용한 이야기' 그걸 쓰려고 해요. 하루에 원고지 10~15매씩 일주일에 5일 연재해요. 주중에는 글쓰기가 쉽지 않아서 주말에 쓰고 일주일 분량으로 출판사에 넘기기로 했어요."

소설가 김도언
5월이면 유독 한 씨에게 가족에 관한 산문 요청이 주를 잇는다. 아버지 한승원 씨, 오빠 한동림 씨 역시 소설가로 활동하기 때문. 남편인 홍용희 씨도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한 씨에게 가족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물었다. '한옥'이란 답이 돌아온다. 한 씨는 광주 중원동의 한옥에서 10살 때까지 자랐는데, 이 때 경험이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그 한옥에서 물청소를 한 적이 있어요. 온 식구가 대야랑 호스로 마당에 물 뿌리면서 청소하다가 서로 장난치고, 몸에다가 물 끼얹고 웃고 떠들고 뛰어다녔어요. 햇빛 좋은 여름 한낮이었는데, 그게 밝은 기억으로 남아있죠. 지금은 허물고 다른 건물이 지어졌어요. 제가 한옥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생각해요."

아버지의 교습법

최근 장편 <꺼져라, 비둘기>를 낸 씨. '비둘기네 해장국'집을 배경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18살 소년 강이산과 그 가족사를 그린 이 소설은 조선시대 고전 소설처럼 선악구도가 선명하다. 때문에 이 소설을 처음 인터넷 연재로 접했을 때, 필자는 그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줄 알았다.

소설가 장은진
연재 후 '등장인물 소개', '소설 밖에 모인 사람들' 등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작가는 '소설 전략'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바꾸었다.

"저는 선악이라는 견고해 보이는 구도가 갖고 있는 허위와 위선성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이야기 서사구조가 자연적으로 만드는 메시지에 집중했는데, 다 써놓고 보니, 이야기 구조에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문학사회학적인 담론과 성찰을 담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조와 형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서사구조와 작가의 욕망 사이에서 길항하는 내적 모순의 요소를 배치하게 됐습니다. 작품에 실린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에서 말한 것처럼 정의나 진실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자의적인 거죠."

이번 장편은 부인 김숨 씨와 작가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오와시티에 체류한 석달 동안 쓴 작품이다. 김숨 씨도 3권의 장편과 3권의 단편집을 낸 소설가.

두 사람 모두 '작업'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작품 경향과 집필 스타일은 다르다. 예컨대 김숨 씨가 매일 일정분량을 쓴다면 김도언 씨는 주말이나 휴일에 작품을 몰아 쓰는 편이다. "부부가 함께 글 쓰는 장단점이 뭔가?"란 질문에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소설을 쓰지 않는 여자와 살아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란 대답이 나온다.

그에게 가족을 생각나게 하는 것을 물었다.

"자전거요. 7년 전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직업이 교사였는데, 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셨죠. 무뚝뚝하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분이었는데, 저에게 유일하게 가르쳐준 것이 자전거 타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근황을 물었다. 편집장으로 일하는 출판사 일과 개인적인 작업 두 가지 계획이 맞물려 나온다.

"재능과 실력은 있지만 묻혀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진력하고 있어요. 가끔 취미로 시를 쓰고 있는데 모아놓은 작품이 60편쯤 됩니다. 구상을 이미 7, 8년 전에 마친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연재 매체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리고 모출판사의 테마소설집에 줄 단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해마다 피서철이 되면

장편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를 낸 씨. 장 씨는 이 작품에서 전기와 물밖에 먹을 수 없는 여자, 제이와 상처에 짓눌려 살아가는 두 남자, 와이와 케이의 이야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펼쳐낸다. 독특한 상상력과 슬픔을 다독여주는 따뜻함이 눈길을 잡는다.

"소설 모티프나 소재는 이미지나 그림에서 많이 찾아요. 인터넷을 하다가 어떤 사진이 눈에 띄었어요. 빈 방에 콘센트가 있고 콘센트에 큰 전구가 연결돼 있고 그걸 여자가 들고 서 있는 사진. 여자가 전기를 빨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전기를 먹고 사는 여자를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장편은 그녀의 쌍둥이 동생 김희진 씨와 출판사 자음과모음 웹진에 연재한 소설이다. 김 씨가 연재한 작품은 <옷의 시간들>. 두 자매가 나란히 같은 시기 장편을 연재하고 책을 묶어 내면서 최근 화제가 됐다.

"동생이랑 같이 연재해서 부담이 더 했죠. 원고량도 비슷하고 연재 기간도 같았으니까요. 쓰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조회수나 댓글에 대한 부담도 있었어요."

두 사람은 오전부터 한낮까지 작품 쓰는 집필 방식, 소설의 경향, 분위기가 모두 닮아 있다. 작품을 발표하기 전, 서로 작품을 읽고 조언해주기도 한다.

"묘사나 대사 쓰는 방식이 비슷해요. 똑같은 걸 피하려고 발표 전에 서로 쓴 원고를 먼저 보는 편인데, 그렇게 해서 희진이가 소설 장면을 고친 경험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놀랍기도 하고 자극도 돼요."

가족에게 살갑지 못하고 무뚝뚝한 성격도 쌍둥이 자매의 닮은 점이라고. 자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화목한 가족상을 그리면 왠지 어색해진단다. 장 씨에게 가족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피서가 생각나요. 저희는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 못하는 무뚝뚝하고 서로에게 조금 무관심한 편이거든요. 수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한 번도 가족끼리 피서를 간 기억이 없어요. 여름철 피서 관련 뉴스를 보면 '왜 우리 가족끼리 못 갔을까' 생각만 하고 항상 못 가죠. 한 번도 못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피서하면 가족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