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기 - 꿈꾸는 자의 정원' 전유년의 추억과 주변의 따뜻한 모습 담고 내일의 꿈을 그려

'인형의 집' 2010
누구나 꿈을 꾼다. 무언가에 바람이고, 희망인 꿈은 과거를 거닐고, 현실을 더듬으며,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가꾼다. 그러한 세계는 매우 개성적이지만 공통의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시공을 연결하는 '끈'으로 본성적으로 존재한다.

는 그러한 본성에 터잡아 다양한 끈들을 만들어낸다. 자주 활용되는 재료는 유년시절의 추억, 동화, 정물화, 성서적 이야기 등이다. 재료를 빚는 손과 눈은 밝고, 따뜻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돌고, 따스한 감성이 화수분처럼 뿜어나고, 순수한 시절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런 김 작가를 특징짓는 익숙한 그림과 올해 새롭게 나온 작품 40여 점이 롯데호텔(본점) 갤러리와 용산 비컨 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동화책 속 그림이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구도와 파스텔 톤 색채는 관객이 쉽게 다가가고, 편안하게 한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 한번쯤 만난 듯해 살가움이 더해진다.

그러한 편안함, 살가움은 작품이 동화적 요소를 띠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김 작가가 지난한 작업의 성년 과정을 거쳐 건져낸 구도와 색감으로 작품화한 공력 덕이다.

김은기 화가
그는 1990년대 작업 무렵 뭉크와 프란시스 베이컨 등을 좇아 내면세계에 천착했다. 하지만 우울하고 무거움에 눌려 방황하다 2000년대 초 미국 여행길에 우연히 '스노우맨(Snowman)'을 만나면서 작업의 방향을 바꿨다.

"스노우맨을 보니 어린 시절 그것을 보고 즐거워했던 기억과 당시 읽었던 또 다른 책들이 떠오르면서 행복했어요. 그런 것을 모티프로 작업하면 내가 즐겁고 남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잖아요."

그는 2000년 대 중반 이후 '스노우맨 시리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동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다수 내놨다. '이삭과 리브가', '기도하는 다니엘', '수태고지' 등 성서이야기 작품들은 개인적인 신앙보다는 르네상스 시기까지 미술에 영향을 준 성서를 모티프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성서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는 작품 '노아의 친구들'이 심각하기보다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책이 성경이라기보다 시간이 축적된 인생, 역사로 해석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다.

그의 작품은 구도 안에 스토리가 담겨 있어 보는 재미와 함께 그만의 특징을 나타낸다. 가령 작품 '인형의 집'은 각종 소품과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연극 무대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전하는 듯하다.

최근의 꽃과 화병을 소재로 한 '정물' 시리즈는 좀 더 완숙한 작품세계로 나아간 인상이다. 화려한 꽃은 씨앗에서 발아해 몇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것으로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그 꽃 안에 책 읽는 여자, 생일, 크리스마스, 정원의 이미지들은 인생의 소소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꿈꾸는 자의 정원'은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있는 자기만의 비밀 정원으로 거기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 이루고 싶은 소망들, 다른 사람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생각들이 모아져 있다.

김 작가는 작품에 유년의 추억을 담고, 꿈꾸는 내일을 그리며, 주변의 따뜻한 모습을 담은 '행복한 정원'을 만들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그 정원의 입장은 5월 20일까지이다. 02)759-7057.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