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선으로 구축되어 가운데가 텅 빈 이 '공간'들은 위로, 옆으로 뻗어나가 집과 같은 형태를 지닌다. 선은 면의 빈 자리 덕분에 제 모습을 번연히 드러낸다.

이렇게 저렇게 꺾이고 제멋대로 뻗어나간 선들은 그럼에도 버려지지 않고 자신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다. 빛이 통과하고, 선을 끌어당겨 만든 그림자들은 또 다시 따뜻한 공간을 만든다. 투명하기에 홀로 갇힐 수 없는 이 '집'들에게 작가는 '널 위한 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일까.

유년 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던 작가에게 집의 의미는 특별했다. 자주 다른 가족과, 혹은 새로운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했어야 했으므로 작가는 그의 생활 태도를 바꿔야만 했고 이는 작가에게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일이 얼마나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자각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평론가 고충환은 전통적 집의 이미지가 가지는 배타성, 자기 주체성이 투명한 집을 만나면서 흔들리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의 주체성은 타자의 시선 앞에 변화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작가는 이를 '케노시스', 자기 비움이라고 설명했다.

선들은 때로 직각을 이루고 사각형과 삼각형을 그리면서도 매섭지 않다. 정확하게 뻗어있지 않은 선들은 그 울퉁불퉁한 흐름 안에 따뜻함을 감추는 듯하고, 하나의 공간을 그림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공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선들은 따로 떨어진 인간의 손이 이어진 것 같다. 작가가 펴둔 '날 위한 자리', 가서 쉬어 주어야 마땅하다.

5월 13일부터 6월 5일까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02)720-5789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