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수희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회색의 넓은 천과 고무 알갱이다. 사실 이 두 가지가 작품의 전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무 알갱이를 어떻게 쌓아 올리고 붙이느냐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바뀌고, 알갱이의 의미가 다른 풍경으로 전달된다.

회색은 여태 색이라기보다 어떤 이미지의 형태로 우리에게 소비되어 왔는데, 이를테면 도시 풍경이나 싸늘한 날씨를 대변하기 위해 쓰였다. 작가는 이 '회색'과 더불어, '분자'에도 주목했다.

맞다. 작가는 '회색분자'라는 말로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회색분자를 다시 분자화하여 회색과 분자로 쪼갰다. 회색분자는 어떤 명확한 색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동화되어 버린다. 알갱이는 어떤 것의 쪼개어진 형태임과 동시에 어떤 것을 구축하는 형태로, 시작과 끝의 형태를 동시에 지닌다.

2000여 개의 회색 고무 알갱이로 빽빽이 구성된 작업에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고, 이렇게 단정적이고 강한 언어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 궁금해진다.

'I am gray' 전으로 관람객과 4번째 독대를 시작한 작가 김수희. '나는 회색이다'라는 말로 자신과 작업을 동일선상에 놓은 작가는 그 '회색'이자 자신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말없이 구멍이 뚫린 회색의 천과, 빽빽하게 뭉쳐 하늘과 땅, 옆으로 솟은 알갱이 콘들은 무심하고 조용히 제 빛을 드러내고 있다.

5월 17일부터 5월 30일까지. 갤러리 무이. 02)587-6123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