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1000년 특별전]

'초조대장경 대방광불호엄경' 권2
올해는 고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판각(板刻)을 시작한 지 1000년이 된다.

고려대장경은 모두 세차례 간행됐는데 초조대장경은 현종 2년(1011) 거란이 침입한 전란의 위기 속에서 판각을 시작해 1087년 완성했으며,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 의천이 출간한 속장경(1091~1102)이 두 번째, 고종 18년(1231) 몽골의 침입으로 부인사의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재조대장경(1236~1251)을 판각한 것이 세 번째다.

대장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불교 경전을 총망라한 것으로, 고려 대장경은 송, 거란,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발전한 불교사상과 인쇄출판기술을 조화시킨 세계 대장경 문화의 꽃이라 불린다. 중국의 손정첨은 그의 저서 <장서기요(藏書紀要)>에서 외국에서 인쇄된 한적으로는 고려본이 최고라고 기술하고 있다.

초조대장경과 속장경 목판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고, 현재 그것을 찍은 판본이 일부 전한다. 초조대장경을 되살린 재조대장경은 판수가 8만 1000여 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며 해인사에 보관돼 있다.

고려대장경은 당시의 불교문화, 인쇄기술의 수준 뿐만 아니라 고려인의 불심의 깊이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창구이다. 이러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고려대장경 1000년을 기념해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초조대장경,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그 중 서울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의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전과 화봉책박물관(관장 여승구)의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 강원도 원주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의 <판화로 보는 불화의 세계>전이 주목받는다.

호림박물관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전

초조대장경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은 특별전을 서울 신사 분관(5월 18일~8월 31일)과 신림 본관(5월 30일~9월 30일)에서 개최한다. 세계기록유산인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의 바탕이 되는 초조대장경의 중요성과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초조대장경을 널리 알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때 찍은 인쇄본으로만 전해지는데 일본에 2400여 권이 있으나 국내에는 300여 권만 확인됐다. 그 중 100여 권이 호림박물관 소장본으로 이번 특별전에는 본관과 분관에 각각 20여 점씩 선보인다.

초조대장경은 경전의 내용상 완성도는 팔만대장경에 비해 떨어지나 서체나 판각술 등 예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비육신지필 급선인지필(非肉身之筆 及仙人之筆 : 사람의 글씨가 아니라 선인의 글씨이다)'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을 정도다.

초조대장경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전시에는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목판본)을 비롯해 불경의 내용을 옮겨 적은 사경(寫經)대장경, 불경 관련 그림이 그려진 대장경, 중국 일본 티베트 등지의 외국 대장경 등 100여 점이 나왔다. 특히 국보 266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권2, 국보 267호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보물 1101호인 '사경대장경, 상지은니대반야바라밀다경' 권305 등 국보 4건과 보물 12건이 포함됐다.

또한 불교 경전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쉽게 표현한 변상도(變相圖) 판화도 눈여겨 볼 만한데 고려의 뛰어난 인쇄 기술을 보여줄 뿐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문화, 고려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화봉갤러리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

화봉갤러리의 특별전은 고려대장경 뿐만 아니라 국내 불전의 여러 인간(印刊)본 및 한중일 대장경판과 티베트와 몽골의 금사경 그리고 동남아 패엽경과 만주어 불경 등을 망라하여 전시한다.

이 자리에는 초초대장경으로 찍어낸 3축과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으로 간행한 20여 축, 부모은중경 25점, 묘법연화경 20여 점, 금·은니 사경(金銀泥寫經) 20여 점, 한글 언해본 20여 권, 그리고 외국 불경 40여 점 등 350점에 이르는 각종 불경 자료가 선보인다.

'사경대장경 상지은니대반야바라밀다경' 권305
초조대장경으로는 , 아비달마대비파사론' 두루마리본이 선보이고, 재조대장경의 목록이 담긴 '대장목록'도 나왔는데 여승구 관장은 "현존하는 도서 목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에는 "거란대장경을 고려대장도감에서 복각해 재조대장경에 편입했다"는 발문이 붙어 있다. 이는 이웃한 여러 나라에서 간행한 대장경을 참고해 고려에서 완결판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달 말까지 열리는 전시의 특색은 불경간행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책을 선정해 판이 다른 많은 이판본이 선정되었고, 세계의 불경을 비교 전시함으로써 불경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고판화박물관 <판화로 보는 불화의 세계> 전

 고판화박물관은 한·중·일·티베트·몽골 등의 불화판화 80여 점을 보여준다. 한선학 관장이 16년간 각국에서 수집한 500여 점 중 엄선한 것이다.

'대반야바라밀다경'
이번 전시작 중 특히 주목되는 한국 작품은 북한 묘향산 보현사에서 1703년에 제작한 관세음보살을 비롯한 8대보살판화와 6지장보살판화를 꼽을 수 있다.

중국 작품 중에는 당나라 유명화가인 염립본(중국 최고의 초상화가)이 그린 '양유관음도' 목판도가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헝겊에 찍은 대형 불화판화인 '오대산성경전도'는 조선 후기 불화판화의 대표작인 '금강산 사대찰 전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 판화 작품 중에는 만화의 칸 나누기 양식이 표현된 '지옥변상도', 성화판 '불정심다라니경', 오백 나한이 모두 그려져 있는 '오백나한도' 등이 눈길을 끈다. 티베트·몽골 작품 중에는 중국 명나라를 명망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던 오삼계를 위한 공덕경으로 만들어진 '대불정백산개다라니경'은 변상도판화가 불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주목받는다.

한선학 관장은 "불화가 지배계층의 것이었다면, 판화로 찍은 불화는 민중들의 생활 속에 신앙의 매개체가 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우리의 불화판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발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15일까지이다.

고려대장경의 간행에 깊이 관여한 대각국사 의천은 대장경의 편찬을 "천 년의 지혜를 정리해 천 년의 미래로 전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고려대장경 1000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들은 고려의 불교문화 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을 일깨우며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대승법계무차별론'

'불설대보부모은중경'
'티켓 불경'
일본 '오백나한도'
한국 '관세음보살(보현사)'
중국 '양지관음(만력)소'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