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영 개인전 'WALK'소통, 기억, 자연 테마 영상, 빛, 사운드 설치 작업 선보여

김승영의 'TOWER', 2009-2011
작가가 3년간 수집해온 500여 개의 버려진 스피커. 제작된 나라도, 연도도 다른, 낡은 스피커 중 186개가 천장에 닿을 듯,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견고한 벽이 된 이것은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말이 통하지 않는, 바벨탑의 비극을 떠올리는 순간, 그 안에서는 새 생명이 잉태되는 듯한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심장박동 소리, 푸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 것처럼 묘한 끌림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타워’란 제목의 이것은 사비나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설치미술가 김승영의 작품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면서 조각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김승영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 스토리가 담긴 물건들을 이용한 영상, 빛, 사운드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소통’과 ‘기억’을 테마로 자연을 소재로 하거나 미디어를 매체로 사용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김승영 작가의 일관적인 테마는 1999년 뉴욕의 P.S.1.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며 작가는 타자와의 ‘소통’에 주목하게 된 것. ‘타워’는 그 경험과 그것을 소화하는 성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된 작품 중 하나이다.

전시장에 놓인 낡은 철제 의자는 관람객과의 소통을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앉으면 차가울 것 같이 생긴 철제의자는 놀랍게도 앉는 순간 온기가 느껴진다.

인간의 체온으로 온도가 유지되는 이것은 시장 상인들이 추운 겨울 날씨에 애용하던 의자다.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의자에서 체온이 전해지는 의외의 반전에 관람객은 경직되었던 마음을 편안하게 풀게 된다. 작가의 의도를 읽는 데 한층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잊혀져 가는 사물에 새로운 형태와 가치를 부여하여 재탄생시킴으로써, 작품마다 시간의 흔적을 역추적하고 일상의 소리를 담아내어 전시장을 하나의 깊은 성찰의 공간이자 거대한 생명의 공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이로써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사유와 명상을 유도하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느린 호흡을 할 수 있는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김영순 미술평론가)

주로 소통과 기억을 이야기하지만 주요 소재로 삼는 자연은 자연스럽게 생성과 소멸을 드러낸다. 파란 하늘 위 한 점의 구름이 떠 있는 듯한 작품 ‘구름’이 그렇고,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에서 발견된 죽음의 현장과 체온이 느껴지는 철제 의자에서도 생과 사가 순환한다.

김승영 작가의 16번째 개인전 는 사비나 미술관 전관(지하 1층, 지상 1,2층)에서 오는 6월 3일까지 이어진다. T. 02-736-4371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