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연극들

강풀의 만화 '26년' 5.18(출처=다음 만화속세상)
5.18 민주화운동이 31주년을 맞이하면서 5.18이 갖는 의미도 문화예술계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되고 있다.

기존의 창작 방식이 당시 상황을 다큐멘터리적 표현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5.18이 주는 메시지를 그 안에 녹여내는 것으로 유연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재현에서 현재로의 연장으로

5.18을 가장 '전투적으로' 그려온 것은 영화였다.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를 시작으로 이어진 5.18 소재 영화들은 주로 당시의 사실적 재현에 초점을 맞췄다. <꽃잎>은 미쳐버린 소녀의 과거를 추적하고, <박하사탕> 역시 절규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과거를 되돌리는 여행이다. 5.18 소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화려한 휴가> 역시 '그날'의 사건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5.18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이 같은 접근법은 더 이상 큰 울림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들에게 5.18은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만 '학습'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현재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참극과 상처가 어떻게 현재에 이어지고 있는가를 작품에 담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최근 영화화가 무산된 강풀의 만화 <26년>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어서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2006년 연재 당시 네티즌에 의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웹툰은 이번 영화화 무산 소식과 함께 재독 열풍이 불고 있다.

작품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시민군의 아이들이 자라서 당시 발포 명령을 했던 권력자를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한몫을 담당하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그날의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현재'를 보여준다.

네티즌들은 "이 만화 덕분에 그때의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을 남기는가 하면, "비록 영화 <29>년은 무산됐지만 언젠가는 <32년>이나 <33년> 등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을 잇고 있다.

한편 지난 12일 개봉한 <오월愛>는 이처럼 현재까지 이어진 5.18의 의미에 충실한 영화로 주목되는 영화다. 아직까지도 '폭도의 도시'라는 오명으로 불리는 광주는 1980년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날을 겪은 소시민들의 일상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연상시키며 '끝나지 않은 5.18'을 자연스레 젊은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영화 '오월애'
웃음으로 승화시킨 슬픔

무대에서도 5.18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특히 연극에서는 그날의 사건을 고통과 슬픔보다는 유머와 위트로 감싸안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차범석 희곡상 제3회 수상작인 정경진 작가의 <푸르른 날에>는 5.18 당시 사랑하던 남녀와 그 후 30여 년의 인생 역정을 구도(求道)와 다도(茶道)의 정신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과거의 상처를 견디지 못한 남자가 어린 딸을 형에게 맡기고 불가에 귀의하지만, 딸의 결혼과 함께 속세의 인연을 애달파한다는 내용이다.

10일부터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연출가 고선웅의 각색을 거쳐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으로 재탄생됐다. 고 연출가는 어둡고 무거운 서사와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함정을 역이용해 오히려 과장되고 희극적인 기법을 취한다.

그렇지만 5.18의 진정성은 놓치지 않는다. 고선웅 연출가는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목도가 아니라 현재를 환기해주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만난 인물들은 힘들지만 담담한 척, 슬픈데 기쁜 척, 사랑하지만 아닌 척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서정주의 시와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이 여는 마지막 장면은 이런 과거의 비극과 아픔을 기억하는 한편,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신촌연극제의 일환으로 공연되고 있는 <짬뽕>도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5.18을 웃기는 블랙 코미디로 풀어냈다. 이 연극은 19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짬뽕 한 그릇 때문에 모든 상황이 벌어졌다고 믿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다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개되는 사건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그러나 삶의 터전이었던 광주에서 펼쳐진 괴로운 사건에 주저앉은 그들의 모습은 광주시민들의 슬픔과 허탈함을 공감하게 한다.


연극 '푸르른 날에'
연극 '짬뽕'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