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40여 년 화업 응축된 동양화의 변주 신선한 감흥 선사

'시선(視線) Line of vision', 면에 수묵 금분
동양화의 변주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정종해 작가(한성대 교수)의 새 작품들은 매번 신선한 감흥을 준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 화랑에서 6월 1~10일 열리는 전시에서도 정 작가는 이전과는 또다른 문향과 깊이를 선보인다. 2004년 예술의전당 전시 이후 7년 만에 갖는 개인전은 40여 년의 화업이 응축된 기품이 묻어난다.

자연을 소재로 수백호의 대작 수묵화가 주조를 이뤘던 예술의전당 전시와는 달리 이번 전시는 중·소품 위주의 내실 있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특히 변화를 거듭해온 화업의 궤적이 완숙한 경지에 이른 흔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 작가는 1974년 국전에서 국무총리상 수상 이후 '고(古)'시리즈의 추상 작업, 80년대 묵선(墨線)의 수묵작업으로의 회귀, 80년대 중·후반 색체가 동반되는 완전한 추상 시도, 90년대 중반 수묵의 전면적 수용, 2000년대에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작품 재료에도 변화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정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고, 기반을 이루는 것은 동양화의 전통과 정신이다. 그는 형상의 묘사를 통해 정신세계를 그려낸다는 이른바 '이형사신(以形寫神)'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자연을 주제로 자연의 숨소리, 생명력, 에너지를 탐색하고, 인간과의 조화, 교감에 대한 상생 관계를 모색한다.

'여명 Morning twilight', 면에 수묵채색
그는 작가노트에서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가시적인 대상, 실재하는 대상이 내포하는 생명의 힘을 교감하고 부각시키는 것, 사물이 본래 그대로 존재하는 힘을 교감하고 사랑하는 것이 나의 작화 태도이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 다수 등장하는 동물들은 작가의 의중을 의탁해 표현한 의미망인 셈이다.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상징이다.

그의 작품에 두드러진 붓 놀림, 즉 필획(線)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동양화의 선은 형태의 단순한 윤곽선이 아니라, '사물의 내적 선'을 포착, 대상과 작가에게 편재하는 '기'를 표현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획에 의한 표현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그 자체로서 리듬감과 생명감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선으로 그려진 그림은 그리는 선과 쓰는 선이 융합된 '서화일체(書畵一體)', 선이 이미지이자 그림인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의미를 전하기도 한다. 이는 호랑이 얼굴에 '哲眼觀世' 화제를 단 작품, 또다른 '화락(和樂)' 이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품 재료로 종이 대신 천(綿)을 쓴 것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천은 선의 이동과 흐름을, 기운을 유지시키면서 채색을 머금어 독특한 채색화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작들과 관련, 박영택 미술평론가(경기대 교수)는 "동양회화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대상의 본질을 궁구하고 관찰해 동양화의 소중한 의미망들이 환생할 수 있는 지점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질주 Scamper', 면에 수묵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