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선정, 작업세계 총체적 조망

'Voices', 2011
최수앙의 작품들은 문득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마주하면 불편하고, 혹은 '진실'이 두려워 일부러 외면하는 것들.

최수앙은 그렇게 비가시적인, 터부시하는 것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과연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는 주로 인체를 주제로 그러한 작업을 한다. 그의 인물은 보통 사람이지만 평범하기보다 무언가 결여되거나 혹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병리적 인물을 통해 그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되짚고, 무덤덤한 '현재인'을 각성하게 한다.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한창이다. '2010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로 선정된 것에 기반해 열리는 <최수앙>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가려움증(Pruritus)'이나 '아스퍼거스증후군(Islets of Aspergers)' 같은 한 증상만을 주제로 정하지 않고 그의 주요 작업세계를 총망라해서 보여준다.

'The Hero', 2009
앞서의 전시들과 달리 기존의 작품들이 뭔가 소외 혹은 과잉되거나 결핍된 인간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면,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극사실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리 만큼 촛점이 흐려진 일명 '포커스 아웃(focus out)'된 조각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1층 '식물적 상태(Vegetative State)'와 3층 '일상의 실험실(Ordinary Laboratory)' 은 기존 작업의 핵심이 되는 주제를 중심으로 엮었고, 2층인 'The Blind for the Blind' 는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개념으로 리스너, 스피커, 관점, 눈 페인팅 작업 모두가 신작으로 꾸며졌다.

1층 전시실 '식물적 상태'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라는 거대한 체제 안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인간들의 처지를 '식물적 상태'에 비유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처음 마주하는 작품 'The hero'는 해병대 출신이자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재직한 아버지의 나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그가 영웅인지 혹은 희생양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메인 전시작 'Voices' 는 레드카펫이 깔린 단상 위에 2명씩 8줄로 서서 합창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포커스 아웃'된 형상으로 아이들을 규격화시킨 보이지 않는 힘을 여실히 드러낸다.

2층 전시실 'The Blind for the Blind'에서는 타자를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주보고 있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눈동자 작품 'The Blind for the Blind' 는 외부를 향한 구조상 스스로의 내면은 돌아볼 수 없는 '시선의 일방적인 폭력성'을 지적한다.

'Vegetative State', 2007
분리된 공간에 마주하고 있는 남자 'Speaker'와 여자 'Listener'는 모든 것이 희미한 가운데 각각 입과 귀만 강조돼 어떻게든 대화하려 애쓰지만 원활한 소통이 힘든 우리의 모습을 드러낸다.

3층 전시실 'Ordinary Laboratory'은 일상의 실험실을 통해 버려지거나 쓸모 없는 것에 대한 가치 혹은 유용성의 문제를 제고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실험용 쥐 'Test Mice',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푸른색 사람인 'Wasted Blue', 파편화된 인체들의 집합인 'Ordinary Laboratory' 등 작가의 메시지는 섬뜩하고, 선명하다. 각각의 전시장 기둥 하단에 설치된 비상구 작업인 'Exits'는 역설적으로 '비상구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듯 최수앙은 소통 불가능성을 통해 소통의 활로를 모색한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과잉과 결핍은 인체의 변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갈등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최수앙은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 거대한 힘에 지배당하는 무기력한 개체들을 향한 끊임없는 고민과 조형적 실험을 통해 과연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며, 우리들 각자는 어디에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의 질문을 되풀이한다.

독일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로 불리는 파울 클레(1879~1940)는 "현대 회화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철학자 들뢰즈(1925 ~ 1995)는 회화가 가시화해야 할 그 '비가시적인 것'은 '힘'이고, 회화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Listener', 2011
최수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또한 우리들에게 막강한 역향력을 행사하는 '비가시적인 힘'들을 인체를 사용해 가시화한다. 그런 비가시적인 힘을 함의하는 작품들은 6월 5일까지 만날 수 있다. 02)737-7650


'Speaker', 2011
'The Blind For the Bilnd', 2011
'Ordinary Laboratory', 2011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