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6.25는 한국의 대표적 비극 코드다.

여기에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가 더해지면, 여태껏 우리의 가슴을 울린 수많은 전쟁 문학의 레퍼토리가 나온다. 1962년 명동극장에서 초연되어 '사실주의 연극의 정수'라고 평된 차범석의 <산불> 역시 그 중 하나.

소백산맥의 두메산골을 배경으로, 남자들이 모두 사살되거나 떠난 '과부마을'에서 일어난 민족 비극을 다뤘다. 국군이 서울을 되찾고 어느 정도 평화를 되찾을 무렵에도, 산골 과부마을에는 여전히 공비들이 출연해 공출을 일삼는다.

마을의 젊은 과부인 점례와 사월. 어느 눈 내리던 밤에 점례의 집에 몰래 숨어든 규복은 자신을 대밭에 숨겨준 점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 장면을 사월이 목격한다.

세 사람 사이에 이상기류가 발견될 무렵, 사월이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국군의 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대밭을 태울 때, 점례와 사월은 함께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등장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배우들의 힘과 탄탄한 극본이 만나 돌아온 '명품 연극' <산불>. 여기에 국립극장만의 남다른 무대 스케일로 극의 사실성을 더했다.

강부자, 조민기 등 눈에 익은 배우들이 눈길을 끈다. 6월, 연극 <산불>로 '그 날'을 되새겨보자. 6월 5일부터 6월 2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6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