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피그', '못생긴 남자', 규격화된 미 추앙하는 현대인 풍자

연극 '팻 피그'
'양악 수술', '성형 전후 사진', '지방 흡입', '안면 윤곽 수술'…. 온갖 성형수술에 대한 키워드가 뜨는 인터넷 검색창은 외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드러나는 곳이다.

오늘날 외모지상주의는 국경과 성별을 초월해 만연해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법대의 데버러 로우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에서 외모를 가꾸는 데 들어가는 돈은 미국에서만 약 137조 원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왜 우리는 이처럼 외모지상주의의 부당함을 이해하면서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 6월부터 막을 올리는 두 편의 연극은 규격화된 미를 추앙하는 현대인을 풍자하며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뚱뚱한 여자친구, 왜 창피해?

자신에게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만 다소 '몸집이 큰' 여자친구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극단 한양레퍼토리가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 중인 블랙코미디 '팻 피그(fat pig)'는 이처럼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유쾌하게 꼬집는다.

연극 '못생긴 남자'
국내에서는 초연인 이 작품은 '썸걸즈'로 이름을 알린 작가 닐 라뷰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04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관객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2008년 영국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해 인기를 끈 수작. 국내 연출은 '러브레터'와 '뷰티풀 선데이' 등을 선보였던 최형인 한양레퍼토리 대표가 맡았다.

각색 과정에서 극중 배경이 한국이 되면서 주인공들도 평범한 직장 남녀 '현우'와 '청아'로 바뀌었다. 회사원인 현우는 뚱뚱하지만 밝고 당당한 성격의 도서관 직원 청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외모지상주의자인 직장 동료 등 주변의 수군거림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연극은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뚱뚱함에 대한 인식을 탐색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영화는 최면에 빠진 남자가 뚱뚱함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이 연극은 여자친구의 뚱뚱함이 문제가 안 됐던 남자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체면을 고려하게 되는 현실을 다룬다.

'팻 피그'는 결국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묻는 연극이다. 사회는 개인의 공간인 연애에까지 획일화된 미적 잣대를 들이대며 편견을 조장한다. 연극은 이런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확실한 가치관이 아닐까 하고 묻고 있다.

성형왕국에서 추남이 사는 법

못생긴 남자의 사랑법은 연극 '시라노 드 벨쥬락'에서 시라노의 서글픈 사랑으로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못생긴 남자에게 혼자 살아가기도 힘이 드는 시대가 됐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자들도 여자들의 고민거리였던 성형을 고민하는 현실에 처한 것이다.

게릴라극장이 오는 15일부터 대학로에서 올리는 는 바로 외모지상주의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남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현재 독일어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가 쓴 이 연극은 독일에서 초연된 후 영국, 체코, 슬로베니아 등 유럽과 호주, 일본과 대만에 이르기까지 25개 언어로 공연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은 외모에서 경쟁력을 잃은 남자가 업무에서 좌절하고 성형의 힘을 빌리는 과정을 그린다. 성형수술을 받은 못생긴 남자는 미남으로 새롭게 태어나지만, 성형외과 의사가 성공한 그의 얼굴모형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술하면서 수많은 '유사 얼굴'이 만들어진다.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는 남자의 모습에선 요즘 판박이처럼 비슷하게 보이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특히 4명의 배우가 번갈아 8개의 역할을 연기하는 설정은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은유가 된다.

결국 연극은 외모에 집착해 인간 신체를 물질처럼 주무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연출을 맡은 윤광진 용인대 교수는 "고도 산업사회가 갈망하는 성공의 길에 인간의 고유한 개성은 장애물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규격화되고 박제된 아름다움을 위해 고유의 인간성을 함몰시켜가는 모습을 그리는 이 작품은 세계적인 성형왕국인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극이다"라고 설명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