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18) 꽃다운 젊음의 연이은 자살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영화 '청춘' 죽음의 원인에 답하다

영화 '청춘'
2011년 5월은 그야말로 '잔인했던 달'로 기억될 것이다.

송지선 아나운서, 가수 채동하, 축구선수 윤기원, 정종관 등 20대 '꽃다운' 젊은이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은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인터넷 루머와 각종 스캔들, 우울증과 심적 스트레스, 환경에 의해 불거진 승부조작. 그토록 숨이 막힐 정도로 삶에 대한 무게감이 버거웠을까. 무엇이 이들을 죽음이라는 문턱에까지 내몰았을까.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는 말이 있다.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동조자살 혹은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독일의 작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됐다. 남자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라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자괴감과 고독에 빠진다.

그 역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8세기 당시 이 소설은 유명세를 타면서 소설 속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선 발간이 중단되기도 했다.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하지만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자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토와 자살에 대해 격양된 어조로 이야기하면서.

"당신은 모든 것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적어도 지금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자살만 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위대한 행위와 비교하지만, 이것은 절대 옳지 못해요. 뭐니뭐니 해도 자살이란 결국 나약함 때문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괴로움에 가득 찬 삶을 꿋꿋하게 참고 견디어나가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쉬우니까요."

알베르토는 자살이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요. 기쁨, 슬픔, 괴로움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고, 그 한도를 넘으면 당장에 파멸하고 말아요. 따라서 이런 경우 어떤 사람이 강하다 약하다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일이건 육체적인 일이건 간에 자기의 고통의 한도를 견디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지요. 따라서 나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베르테르는 인간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베르토가 역정을 냈던 것처럼 베르테르에게도 소리치고 싶다. "그건 역설이요! 지독한 궤변이오!"라고.

지난 5월 25일은 영화감독 곽지균의 사망 1주기였다. 영화 <겨울 나그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젊은 날의 초상>, <청춘>, <사랑하니까 괜찮아> 등을 연출하며 젊은이들이 보는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회고했던 그다. 하지만 1년 전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 때문일까. 2000년 그가 만들었던 영화 <청춘>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청춘>은 대입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들의 슬픈 성장기가 담겨 있다. 배우들의 노출연기로 '야한 영화'라는 평이 나있지만, 그 일면을 보면 상처에 상처가 더해진 젊은이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서울에서 경남 하동으로 전학 온 자효(김래원 분)는 자신을 유혹했던 친구 하라(윤지혜 분)와 성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자효는 그녀에게 냉랭하게 대하고 상처받은 하라는 학교 옥상에서 자살하고 만다. 이 광경을 목격한 자효는 충격에 빠져 대학생활을 섹스 중독자로 지낸다. 마치 상처에 대한 치유라도 받으려는 듯.

자효의 단짝인 수인(김정현 분)은 고3 국어교사인 정혜(진희경 분)를 짝사랑하지만 쉽지 않다. 수인은 결국 정혜에 대한 사랑에 고뇌하다 자살로써 해바라기 사랑을 마감한다.

<청춘>은 20대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성(性)에 집착하는 영혼들로 풀어낸다. 그러나 그 말미는 자살이라는 쓰디쓴 결정을 보여주며 젊은 영혼들의 나약한 실체를 드러낸다. 자효는 결국 진정한 사랑인 남옥(배두나 분)을 만나지만 그마저도 깨닫지 못한다.

상처가 상처를 낳고 슬픔으로 이어지는 것. 나중에 후회를 해봐도 소용이 없다. 영화 속에서 남옥의 엄마가 자효에게 남긴 말이 여운을 남긴다.

"한번 상처받은 놈은 다시 누구한테든 상처를 주는 법이지."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