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머메이드 씨어터 예술감독, 짐 모로우북미 최고 어린이 극단 세 번째 내한 '배고픈 애벌레' 공연
월요일엔 사과 한 알, 화요일엔 배 두 알, 이렇게 먹어도 배가 고팠던 애벌레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까지 먹고는 배탈이 나고 만다. 다음날 싱싱한 나뭇잎을 먹고 나아진 애벌레는 2주간 번데기 안에서 잠들어 있다가 아름다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현대의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그림동화 작가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 단순한 스토리텔링과 사랑스러운 일러스트에 풍부한 색감까지 더해지면서 이 책은 전 세계 아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는 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귀엽고 작은 애벌레는 깜깜한 무대 위에서 형광 빛으로 살아 움직이며,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에서만 세 번째 내한공연을 열고 있는 캐나다 머메이드 씨어터의 공연을 통해서다.
1972년에 설립된 머메이드(mermaid, 인어공주) 씨어터는 동화책을 기반으로 공연을 제작한다. 캐나다 남동쪽의 작은 농촌마을 노바스코샤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 공연장의 가치는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북미 대륙과 유럽은 물론 남미, 일본, 호주, 홍콩, 마카오, 베트남, 대만, 한국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공연은 모두 초청으로 이뤄지고 있다니, 이 작은 극단의 저력은 더욱 눈길을 끈다.
세계적인 성공의 중심에는 작품 구상부터 완성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예술감독 짐 모로우가 있다. 이전에는 배우생활을 했던 그이지만, 1978년 머메이드 씨어터에 합류해 극단의 독창적인 무대를 책임져왔다. 그가 만든 인형과 함께 자란 딸은 이제 머메이드 씨어터의 단원으로 세계 투어를 함께 하고 있다.
"제가 본 바로 전 세계 어린이들은 다 똑같아요. 재미있는 걸 좋아하고, 떠들기도, 함께 하는 것도 좋아하죠." 늘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만나 왔기 때문인지, 짐 모로우는 보기 드문 선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매 공연마다 갖는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무대 뒤 분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뒤늦게 진출한 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렸는데요, '배고픈 애벌레'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원작자인 에릭 칼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그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알거든요. '배고픈 애벌레'를 읽어보면 특별한 사건이 없어요.
애벌레는 단지 먹고 싶어하고, 많이 먹고 난 후 자고 일어나서는 나비가 되죠. 하지만 전 세계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좋아해요. 우리 공연의 성공은 에릭 칼의 작품을 존중하고 고스란히 살려냈다는 데 있습니다.
매우 심플하고, 느리고,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에릭 칼의 동화 그대로지요. 우리의 다른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랑 똑같이 생긴 등장인물이 책이랑 똑같이 움직이는 거죠.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움직일지를 더 많이 생각한답니다.
지금도 모든 공연의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지만 과거에는 배우였다고 들었는데, 처음 어떻게 이 일을 배우셨나요?
사실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원작인 동화책을 공연으로 옮기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지요. 당시에는 캐나다에서 가르치는 곳도 없었기에 혼자 해내야 했지만 학교가 있었다 해도 이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었을 거에요. 내 방식대로 해가는 것을 좋아해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네요.
아마 그렇겠죠. 기존의 마리오네트를 비롯한 인형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이죠. 전 인형을 조각하고 그 안에 손잡이를 넣었어요. 그전까지 카멜레온이나 애벌레를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지만 거기에 다리를 넣고, 손으로 잡고 몸을 움직이면서 그 움직임을 연구했죠.
음악을 작곡해 그것에 맞춰서 해보니 우리가 움직이는 대로 카멜레온과 애벌레도 움직이더군요. (웃음)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 극단의 강점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이 끝나고 매번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집니다. 무대 비밀이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한데, 왜 이런 시간을 갖는지 궁금한데요.
좋은 질문이네요. 난 아이들과 부모들이 인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해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손을 들고 질문할 기회를 주는 거죠. 막상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뒤에는 굉장히 복잡한 아이디어와 표현과 문제해결의 과정이 있지요. 우리가 만드는 공연은 전적으로 상상력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아요. 오히려 공연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 경험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조그만 아이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배우에게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판타스틱한 일이잖아요?
오랫동안 어린이 공연을 제작해왔으니 이에 대한 철학도 확고할 것 같은데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아이들은 흥미롭고 신이 나면 소리를 지르고 말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공연에서도 아이들은 책에서 본 내용이 나오니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거든요. 하지만 많은 공연장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게 제지를 하거나 가르치려 들죠. 조용히 앉아서 듣게만 하는 거죠.
아이들이 공연에 몰입하면서 소리를 지르면 곧 어른들은 '쉿!'하는 제스처를 취해요.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아이들의 집중력을 분산시킵니다. 난 아이들이 공연장에서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고픈 애벌레'외에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머메이드 씨어터의 공연이 있다면.
'배고픈 애벌레'와는 다른 스타일의 공연 중 레오 리오니 원작의 'Swimmy'가 있어요. 커다란 스크린에 프로젝션을 사용하는 그림자 인형극이지만 그림자는 흑백이 아니라 칼라죠.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꼭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머메이드 씨어터의 '배고픈 애벌레'는 이달 21일까지(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서울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부산(6월 23일~26일)과 거제(6월 30일~7월 3일)로 이어간다. 이후 싱가포르와 영국으로도 투어가 이어진다.
그는 올해 10월 뉴욕에서 에릭 칼 원작의 또 다른 작품을 초연할 예정이다.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1~2년이 족히 걸리지만, 한국 캐릭터의 무대화 계획도 가지고 있어 머지않아 또 한편의 멋진 작품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