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선 개인전 전농ㆍ돈암ㆍ남가좌동 일대 사라져 간 주택들의 천장 사진들

어느날 사진작가 장수선은 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벨'이라는 주제로 도시의 풍경을 찍던 중이었다. 아파트 행렬이 끝이 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살겠다고....'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번영과 진보는 삶의 공간을 바꾸어 놓았다. 단독 주택은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붕은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집집마다 대출금과 투기의 욕망이 끼어들었다. 집을 지키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그래도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조금만 견디면, 편안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헛되고 질긴 꿈은 다시 포클레인을 불러 들였다. 더 높은 아파트는 폐허 위에만 지을 수 있으므로.

하지만 '새마을 운동'이 '뉴타운 사업'으로 진화하는 동안 우리도 그만큼 행복해졌을까. 대부분은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고, 내 집 마련은 소수의 특권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장수선 작가는 기원을 찾고 싶었다. 무엇보다 당장 포클레인이 지우고 있는 과거부터 기록해야 했다. 금세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말 터였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재개발 지역을 찾았다.

무너져 가는 집들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것은 '천장'이었다. 바로크, 로코코 스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천장만이 손 닿지 않는 곳에서 아수라장 같은 인간의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작가는 천장을 마주했다. 바닥에 누워 올려다 보는데, 어쩐지 자신이 눈을 뜨고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이 유적 같기도, 천상 같기도 했다. 집주인들은 천장을 저렇게 꾸며 놓고도, 바쁘게 사느라 한번 감상할 새도 없었으리라. 그 와중에 잊히고, 결국 버려진 천장의 화려함은 우스꽝스럽고도 슬펐다.

<높은 곳-카타콤베> 연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전농동과 돈암동, 남가좌동 일대에서 사라져 간 주택들의 천장 사진이다. 언뜻 보면 중동산 카페트 같기도,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화려한 스타일은 집주인 개인의 취향만은 아니다. 동네 집들 천장이 비슷비슷하다. 알고 보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식이다.

"1980년대 중반쯤 유행했던 스타일이에요.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정치적으로도 진보한 시기죠. 중산층의 꿈이 널리 퍼져 나갔어요. 저 천장들은 근대화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서구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 곧 근대화였던 거죠."

천장들은 한국 근대화의 속내를 증언한다. 서구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동경과 자격지심이 뒤얽힌 착종의 풍경. 저 천장 밑에 펼쳐져 있었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거실이 그려진다.

위풍당당한 가죽 소파 앞에 컬러 TV와 비디오 플레이어가 놓여 있고 한편에는 가족 사진이, 한편에는 피아노가 자리한 공간. 한국사회의 욕망이 얼마나 획일적이었는지, 새삼 깨달아진다. 그리고 한때는 영원할 것 같았던 꿈도 너무 빨리 밀려나고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꿈과 현실, 서구 문화와 관습이 충돌한 흔적도 남아 있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에는 전구가 없다. 과시하기에는 좋았지만, 전기세가 많이 나온 탓이다. 서구식 천장에 부적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겹겹의 벽지들은 세월의 흐름을 드러낸다. 욕망은 유행에 휩쓸려 왔을 것이다.

작가는 이들 천장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실 때마다 양장을 입으셨던 기억이 났어요. 아, 우리 어머니들이 저 천장처럼 살았구나, 알게 됐죠."

이 사진들에 고대 기독교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 명칭을 붙인 이유는 뭘까. 작가는 종교적으로 핍박 받았던 기독교인들이 몰래 모여 기도했던 카타콤베의 벽화들이 천장 장식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둥바둥 누리고자 했던, 그러나 금방 유효 기간이 지난 삶의 흔적들에서 오래된 예언, 되풀이되는 역사를 떠올렸다.

"과거를 몰락시키고 새로 지어질 문명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경고죠. 불과 1~2년 사이 저 천장들이 모두 없어진 것처럼요. 죽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미래적 기록'인 사진의 역할인 것 같아요."

<높은 곳-카타콤베>라는 제목은 곱씹을수록 역설적이다. 너무 정직해서 오히려 기이한 느낌을 자아내는 사진의 구도는 근대에 대한, 번영과 진보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뒤틀려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 같다. 사진은 6월13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되었고 사진집으로 출간됐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