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서로 다른 형식의 3개 이야기 잇달아 공연

'디자이 오사무 단편선' 개는 맹수다를 무대 올리는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과 배우들
20세기 대표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연극 세 편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8일부터 오는 26일까지 공연되는 '단편소설 극장전'이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 '서울 1964년 겨울'을 첫 무대로 다자이 오사무의 세 단편을 각색한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개는 맹수다'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미국 작가 레이몬드 카버의 '코끼리'가 셋째 주에 공연된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양손프로젝트, 극단 청년단 등 세 극단과 소극장 산울림이 공동으로 마련한 프로젝트다.

세 작가의 소설은 모던하면서도 멜랑콜리한 감성으로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현재도 사랑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의 감각적 문체가 연극으로 만들어지면 어떤 여운을 줄까?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를 무대 올리는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과 배우들을 만났다.

연극으로 느끼는 소설의 여운

무대에 오르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은 '황금풍경', '축견담', '직소' 등 3편이다. 앞의 두 편의 작품은 17~25분 가량 무대에 올려지고, 마지막 작품 '직소'는 40분 가량 공연된다. 세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연극 형식으로 연달아 공연된다. 이를테면 세 명의 배우가 '황금 풍경'에서는 세 개의 자아로, 나머지 둘에선 한 명의 화자와 두 명의 코러스로 배역을 나눈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각색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소설을 무대화 할 때 어떤 장점을 살릴 수 있는가?'였어요. '황금 풍경'과 '직소'는 거의 원작의 문장을 살려 썼고, '축견담'은 소설의 형식과 순서를 바꿔 새롭게 만들었죠."

연출가 박지혜 씨의 설명이다. 작품을 준비하며 극단 단원들은 함께 모여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중 무대로 그릴 수 있는 작품을 추스르고 다시 이 작품들 중 특정 주제로 묶을 수 있는 작품을 골라 3편으로 묶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하는 박 씨는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릴 단편소설을 고르고 대본을 썼다.

'엄마를 부탁해', '가시고기', '남한산성' 등 상당히 많은 소설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소설이 공연으로 만들어지면 관객들은 실망한다. 사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마음대로 상상하던 풍경을 무대에서 직접 대면할 때 환상이 깨지기 때문이다.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꿀 때 글맛이 달라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소설의 맛을 무대에서 재현하기란 연출과 배우들에게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어체로 쓰인 '직소'는 대사 거부감이 거의 없었지만, '축견담'은 따옴표를 제외한 문장이 거의 다 서술로 돼있어요. 기승전결이 분명한 사실주의 연극보다 말하기가 쉽진 않지만, 딱딱한 말투가 주는 여운도 있어서 소설의 말투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해요." (손상규)

"저도 '축견담' 같은 경우에 문어체라서 대사 뱉기가 힘든데, 단편소설을 읽어준다는 컨셉트로 공연을 준비하기 때문에 이런 말투가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양조아)

양손프로젝트가 '황금풍경'과 '축견담'을 무대에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직소'는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 연극으로 만든 적이 있다. '1+1인극 직소'란 제목의 2008년 공연에서는 1인극으로, '십이분의 일'이란 제목의 2009년 공연에서는 2인극 형태로 12가지 장면을 극으로 만들었다.

세 '직소'에 모두 참여한 배우이자 극단 대표인 양종욱 씨는 "연극 언어, 형식에 대한 실험이 배우에게 공부가 되는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도 한 가지 텍스트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고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 탄생일에 무대 오르는 소설

양손프로젝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의 연극인들이 주축이 된 '배우중심 극단'이다. 대다수 극단들이 연출 주도의 작업방식과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배우들이 기획단계부터 참여하고 작품선정과 공연형식, 방향성을 결정하고 주도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양종욱 씨 외에 손상규 씨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단원들에게 많은 작가 중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이유에 대해 물었다. 손상규 씨는 "좋아하던 작가였고, 이전에도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으로 공연한 적이 있었다.

다자이의 단편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 씨 역시 양종욱 씨처럼 단편 '직소'를 연극으로 만든 세 작품에 모두 출연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허무와 퇴폐로 상징되는 세기말적인 작풍, 인간 내면을 꿰뚫는 천재성 넘치는 문장으로 일본은 물론,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가진 작가다. 대표작 <인간실격>을 비롯해 그의 작품은 흔히 '자의식 과잉의 사소설적 자기고백의 문학'이라 일컬어진다. 극단적 허무주의로 독자들마다 호오가 엇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내면을 드러내는 작가죠. 그래서 독자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 위로받는 것 같아요. 우울한 삶을 살았지만 예술가로서 뜨거움도 느껴지고요. 그 뜨거움이 어떤 순간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죠. 선배 예술가로서 저에게 자극을 주기도 하고요." (양종욱)

연출을 맡은 박지혜 씨는 "지독한 자기비판의 다른 말은 순수에 대한 열망"이라며 "선별한 세 편의 단편 모두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고백이다. 다자이 자신의 사적인 고백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작가의 허무주의가 단순한 자기 학대가 아니라 순수해지고 싶은 열망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모습을 연극에서 표현하려고 했는데, 이를테면 세 명의 배우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고백의 과정에 동참해요. 우스꽝스럽고 비참하고, 지독하게 절실하죠."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 개는 맹수다'는 날짜를 맞춘 것처럼 작가의 작고일(6월 13일)부터 탄생일(6월 19일)까지 공연된다. 작가의 독특한 감수성과 마성의 목소리가 되살아날지, 무대에서 확인해 보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