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속으로'생존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삶, 키넥트 기술과 접목해 그려

발레와 현대춤이 시대와 호흡하며 변신을 거듭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반면 한국춤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해설'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전통춤과, '질과 양' 양면에서 여전히 부족한 창작춤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24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순환 속으로(In a Cycle)'는 이런 열악한 여건에서 나온 파격적인 한국춤이다. 한국춤과 디지털 기술과의 관계를 꾸준히 연구해온 전통무용가 이미희가 한국춤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인터랙션 기술을 도입한 것. 한 마디로 '디지털 한국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 사용된 기술은 최근 국내에도 게임기로 출시된 바 있는 키넥트(Kinect) 기술이다. 초기의 디지털 댄스가 무용수의 몸에 동작인식 센서를 부착하고 컴퓨터가 이를 감지해 점과 선으로 구현하는 원식적인 형태였다면, 키넥트 센서는 무용수의 신체 부위를 카메라로 감지해 그 움직임을 동작으로 인식하여 스크린 속의 아바타로 구현하는 첨단 기술이다. 댄스게임에서나 가능했던 이 기술이 춤 공연에 도입된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다.

하지만 '순환 속으로'는 다른 디지털 공연의 경우처럼 춤이 현란한 영상 기술에 가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한국춤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춤'이어야 한다는 이미희 안무가의 안무철학 때문. 이 안무가는 인간의 삶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몸짓을 '밥그릇'이라는 상징물에 담아 표현한다. 그래서 작품의 부제도 '밥그릇 전쟁'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존을 위해 밥그릇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음양오행'과 '윤회사상'으로 풀어내는 안무가의 눈은 철저히 한국적이다. 이는 현대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창작춤의 양상에서 한국춤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다짐으로 보인다. 이런 의지는 춤과 상호작용하는 전통악기의 라이브 연주에서도 그대로 읽힌다.

이 작품은 한국춤과 기술의 인터랙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미희 안무가의 연구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2009년 인터랙티브 댄스 커뮤니케이션 'Lifecycle'에서 출발한 '순환 속으로'는 지난해 초연을 거쳐 이번 공연에선 키넥트 기술과 '밥그릇' 콘셉트를 보완해 보다 세련되게 완성됐다.

초연 때 하나였던 밥그릇은 이번 공연에선 '동냥 그릇', '소쿠리', '요강' 등으로 다양해졌다. "동냥 전후, 볼일을 보기 전과 후과 다르듯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그릇으로 표현했다"는 이 안무가의 설명이다.

여러 요소가 융합된 진보적인 공연인 만큼, 한국춤 공연에서는 만나기 힘든 전문가들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독일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technologie) 초청예술가로 활동한 양용준 국민대 겸임교수가 음악감독을 맡았고, 2007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대상작 '89degree'의 영상으로 호평을 받은 김성철 영상 디자이너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생(生)과 사(死)의 순환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첨단 디지털 기술로 표현한 시도로 눈길을 끄는 '순환 속으로'. 그러나 이번 공연은 한국춤에 대한 오래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춤계와 대중 모두에게 어떤 충격을 줄 것인지에서 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