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뉴미디어아트의 십 년] 역대 수상작들 한자리에…DVD와 도록도 펴내

중산층가정의대재앙(윤성호)
35분가량의 영상은 종종 검은색과 흰색으로 칠해졌다. 이 작품 주인공이자 감독인 임덕윤 씨가 팔을 휘젓거나 땅을 디디며 파악할 수 없는 곳은 그대로 암흑이었다.

배우와 연출가 생활을 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후에 제작한 이 작품은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가감 없이, 그러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모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순간, 시각장애인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누군가는 독사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다. 신장장애 탓에 혈액투석을 위해 일주일에 3번 병원을 오가는 길이 힘겹기도 하지만 보이스 아이 스캐너를 이용해 즉석 미역국을 끓여 먹고 찾아온 친구와 근황을 나누고 슈퍼마켓에서 커피믹스를 사는 그의 삶은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임덕윤 감독의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0.43'은 지난해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NeMaf, 이하 네마프)에서 최고구애상(대상)을 받았다. 비시각장애인이 아닌,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대상 선정의 이유였다. 그것은 그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작업을 진행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의 대안적인 장르를 탐색해오며 네마프를 주최해온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지난 10년을 정리하며, 기획전 '한국 뉴미디어아트의 십년'을 미디어 극장 아이공에서 열고 있다.

시간의식(김곡, 김선)
'인디비디오페스티벌'을 계승한 네마프는 그동안 영상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 영상시, 추상 애니메이션, 댄스필름, 비주얼 퍼포먼스, 포스트 다큐멘터리, 비디오액티비즘 등 기존의 획일화된 장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이들 '대안 영상'은 네마프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소개해온 작가만 600명이 넘는다.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이어지는 10주년 기념 기획전에는 네마프의 역대 수상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7편의 스크리닝과 36점의 전시작이다.

이중 스크리닝은 총 6개 섹션으로 나뉘어 비슷한 시기의 작품 3~6 작품을 묶어 상영한다. 시대별 뉴미디어 영상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 중에는 임덕윤 감독의 작품 외에도 최근 개봉한 공포영화 '화이트:저주의 멜로디'의 김곡, 김선 감독의 초기 작품이자 2002년 디지털 스페이스상 수상작인 '시간의식'을 볼 수 있다. 곧 '도약선생'을 개봉하며 상업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윤성호 감독의 2003년 비디오 액티비즘상 수상작인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과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도 상영된다.

아이공은 10주년 기획전에 맞춰 지난 역사를 집대성한 DVD와 도록을 펴냈다. 네마프 주최 외에도 1년에 10회 이상의 기획전을 진행한 아이공은 도록을 통해 531편의 작품과 101명의 한국 작가를 소개한다.

누드의민망함에관한연구-교수와여대생미술실기지도(한계륜)
단순히 성과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별, 주제별, 작품별 색인을 꼼꼼하게 정리해 아동, 여성 등 원하는 키워드의 작품만 모아서 상영할 수 있게 한 점이 특징이다.

"네마프는 뉴미디어 페스티벌이라고 해서 단순히 테크놀로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쓰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다양한 장르와 포맷이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미디어가 예술적으로 어떻게 쓰일 것인가이다. 미디어가 담아내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연호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대표는 네마프의 정체성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올해로 11번째 막을 올리는 네마프는 8월 4일부터 14일까지, 11일간 열린다. 미디어 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시네마 상상마당, 포스트 극장 등 홍대 부근 공간 10여 곳에서 개최된다. 국제행사로 전환한 지 올해로 2년째 접어드는 네마프에는 13개국에서 590여 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해외 작품이 80여 편을 넘어섰고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100여 편이 늘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제작한 영화와 개와 전자밥통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흥미로운 작품도 있지만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인 하룬 파루키의 영화도 출품돼 시선을 끈다.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여성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도 열릴 예정이어서 기대가 모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