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작품] (20) 부산저축은행 사건박민규 발랄한 문체로, 필립 로스 정공법으로 펀치

법정 들어서는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
"살다 보면 헷갈릴 때 있잖아요. 예컨데 위장전입을 그렇게 많이 하고도 공직에 나서겠다는 장관 후보가 미친 사람인가, 아니면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미친 사람인가 같은 거 말이에요. 고전을 보면 이런 것들과 비슷한 상황들이 나와요. 그리고 책 속에서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많이 배우게 되죠."

지난주 신문을 들추며, 정혜윤 PD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침대와 책> 같은 서평집으로 꽤 많은 독자를 거느렸는데, 지난해 고전에 관한 책을 내면서 이런저런 강연을 하고 있었다.

부유층 위장전입 같은 부정부패 스캔들은 우리 일상사이니 더 새로운 것도 없지만, 편재하는 이 부정부패들을 별스럽지 않게 보는 대중의 냉소는 꽤 별스러운 사태로 봐야 할 듯하다.

몇 달간 신문과 방송 뉴스를 장식했던 부산저축은행 사건.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얼마 전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이 소환됐다. 여기에 전 대통령수석비서관, 전 대검찰청 간부가 연루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리고 이 뉴스들은 '중부지방 장마'와 '빅뱅 대성 교통사고 수사' 뉴스에 밀려 단신기사로 소개됐다.

신문을 덮고 척, 소설책을 펼쳤다. 저들이 나쁜 놈인가 저놈들 욕하는 내가 나쁜 년인가 헷갈려서.

박민규의 단편 '카스테라'. 이야기는 우우우웅- 방안에서 돌아가는 시끄러운 냉장고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문득 냉장고에 대한 단상에 빠지게 되고 냉장고의 소임은 저온을 유지시켜 '부패를 방지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나'는 툴툴거리며 돌아가는 이 냉장고에 온갖 것들을 다 집어넣는다.

처음엔 '걸리버 여행기'를 집어넣고, 나중에는 '한날한시에 점프하면 지구가 쪼개진다'는 중국인들을 2명만 빼고 다 집어넣는다. 세계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9.11의 원흉인 아들 부시와 테러단들도 집어넣는다. 그의 냉장고에는 보존해야 할 것들과 부패를 방지해야 할 것들이 한데 엉켜 '카스테라'로 굳어진다.

박민규가 발랄한 문체로 작금의 부패에 펀치를 날린다면,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 필립 로스는 정공법을 택한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절정에 대한 1998년 미국을 배경으로 쓴 장편 <휴먼스테인>. 노교수 콜맨 실크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대학에서 퇴임하게 된다.

출석하지 않는 두 명의 학생을 유령과 같은 존재라는 뜻에서 '스푹(Spook)'이라고 지칭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두 학생은 흑인이었고, 예의 단어는 흑인을 지칭하는 폄어적 의미 또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맨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지만, 이 와중에 대학 청소부 포니아와의 사랑도 세간의 욕을 먹게 된다.

이러저러한 갈등 끝에 두 사람은 사고사하게 되고 콜맨의 죽음으로 그의 비밀 하나가 밝혀진다. 유대인으로 알려졌던 콜맨이 실은 흑인이라는 것. 그의 이름인 '콜맨 실크'는 실은 흑인(석탄)을 뜻하는 '콜'과 백인을 뜻하는 '실크'가 합쳐진 단어였다.

흑인인 콜맨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의 희생양이 되는 아이러니. 미국 사회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논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 소설은 2002년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두 편에서 보듯 오늘의 소설은 선과 악, 괴물과 천사 등 유치한 이분법의 구도로 정치를 말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정치가 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윤리 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뒷북 치며 흰소리 하는 저 부패 관련 뉴스들이 잘 안 팔리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담 흰소리 하는 비판적인 뉴스들은 다 단신으로 처리해야 할까? 안 팔리는 뉴스는 가치도 없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생각은 더 복잡해지지만, 저 소설책들 덮고 드는 단상 하나. 저 놈들 나쁜 놈들이라고 욕하는 우리, 아직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