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뮤지컬 한국사회 압축판 조명

연극 '삼등병'
젊은 날의 고생담은 남자들에겐 평생의 안주감이 되곤 한다. 그중 최고는 군대 이야기다. 군대 이야기는 대개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비합리적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청춘의 이야기는 사회의 보편적인 고민들과도 맞닿아 있다.

현재 무대에서도 군대라는 공간을 통해 이런 사회의 속성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이 있다. 한예종 연극원 워크숍에서 출발한 연극 <삼등병>과 뮤지컬 <스페셜 레터>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이한 전개 방식으로 군대라는 작은 사회를 조명한다.

부조리한 시스템, 그래도 적응하라

2006년 대학로 초연 이후 5년 만에 대학로를 찾은 연극 <삼등병>(작, 연출 성기웅)은 군대라는 불가항력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입대하는 순간부터 이름 대신 계급으로만 불리게 되는 청년들은 폭력적이고 이상한 군대의 규칙들에 적응할 것을 강요받으며 '이상한 어른'이 되어간다.

연극은 이런 군대의 규칙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주인공과 그와 함께 보초 서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는다.

온갖 사투리와 비속어가 난무하는 공간은 남성성의 상징으로서의 군대를 나타낸다. 반면 전형적인 '범생이'에, 문학소년이기까지 한 주인공은 이곳에서는 여성적으로 느껴질 정도. 때문에 섬세한 감성의 주인공이 군대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병부터 병장이 되어가는 동안 주인공도 이곳에 적응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구두가 맞지 않으면 구두에 발을 맞춰라'라는 군대식 격언처럼 그도 시나브로 '대한민국 남자'가 되어간다. 하지만 연극은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가 군대에 적응한 것은 과연 처음에 느꼈던 조직의 폭력과 불합리함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어쩌면 적응이라는 것은 그런 조직의 폐해에 자신도 모르게 물드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군대 생활을 버티는 동안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번 공연은 인물들의 기본적인 연령대가 70년대 생에서 80년대 생으로 바뀌면서 초연 때와는 분위기가 약간 바뀌었다. 하지만 당시보다 훨씬 물질적 풍족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대들에게 군대는 더 낯선 공간으로 다가간다. 군대라는 공간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 남자의 이상한 성장기는 그래서 지금의 20대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보여준다. 10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폭력의 공간을 웃음으로 채운다

뮤지컬 '스페셜 레터'
2009년 뮤지컬계에는 두 편의 '군대 뮤지컬'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로 브라스 뮤지컬을 표방한 <바람을 불어라>는 군악대 장병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고충을 다뤘다. 반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공개돼 창작뮤지컬상을 거머쥔 <스페셜 레터>는 취사병들의 일상을 코믹하게 담아내 매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6일부터 다시 무대에 오르는 <스페셜 레터>(작, 연출 박인선)는 유쾌하고 기발한 에피소드들을 이어가며 군대를 긍정적인 공간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 마디로 '재미있는 군대 이야기'다. 2시간에 가까운 공연 시간 동안 암전이 두 번밖에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각종 개인기나 에피소드가 정신없이 이어지는 동안 군대 이야기는 남자들의 지루한 무용담에서 유쾌한 해프닝이 된다.

이야기는 제목에서처럼 한 통의 '특별한 편지'에서 출발한다. "진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던 박인선 연출가는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진심이 담긴 편지가 가장 많은 곳이 군대라는 점에 주목했다. 남자 이름을 가진 동성친구를 여자인 양 선임에서 소개하는 데서 시작되는 도입부는 이후 벌어질 모든 에피소드들의 도화선이 된다.

여성 관객에게 군대 이야기의 편견을 상쇄시켜주는 것은 군대 밖 두 남녀의 러브 라인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남녀가 군대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은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 설정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뮤지컬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수많은 군필자 남성 관객들이다. 보통은 굵고 낮은 남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공연장의 일반적인 풍경이지만, 걸그룹의 무대라도 관람하는 듯한 남성 관객들의 박수와 폭소가 이어지는 <스페셜 레터>의 공연장은 군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는 장소가 된다.

박인선 연출가는 "이번 시즌에는 더 재미있는 군대 에피소드들을 추가하고, 특히 여름 시즌 동안에는 한시적으로 짧은 납량특집 극중극을 삽입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6일부터 대학로 SM아트홀.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