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아 브라운 개인전 '행복과 변덕:완결편'후원자와 예술가 간 권력관계 통해 현대사회 진정한 가치 물어

F & Paul Cozy Up to Each Other, 'Leaving C Feeling Dethroned', 2011
두 여자가 만난다.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펠리시티(Felicity 행복)에게 부유한 상속녀 카프리스(Caprice 변덕)가 다가온다. 예술가가 되려는 열망에 가득찬 펠리시티에게 호기심이 생긴 카프리스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간다.

휘황찬란한 물건과 떠들썩한 파티, 카프리스의 삶은 펠리시티를 사로잡는다. 함께 지낼수록 펠리시티는 상류층의 삶에 젖어들게 되고, 심지어 카프리스를 닮고 싶어한다.

카프리스처럼 화장을 하고 행동하는 펠리시티는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펠리시티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카프리스의 마음이 식고, 한 남자가 끼어들면서 두 여자의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삼각 관계는 위태롭고, 펠리시티는 불안해진다. 어느날, 펠리시티는 뭔가 결심한다. 카프리스에게 커피를 건넨다. 커피를 마시고 무너지는 카프리스. 그리고 카프리스처럼 입고, 카프리스 같은 태도로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펠리시티의 모습만 남는다.

미국 작가 딜리아 브라운은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 '암사슴들'을 일련의 그림 '행복과 변덕: 완결편Felicity and Caprice: The Complete Cycle'로 옮겼다. 주인공들의 관계에서 후원자와 예술가 간 미묘한 관계를 읽어낸 작가는 배경을 현대 뉴욕으로 옮겨 내러티브를 재해석했다.

F Offers the Coffee to C, 'Who is Primping for an Evening Out with Paul', 2011
프레데릭과 와이였던 주인공들의 이름은 '행복'을 뜻하는 펠리시티와 '변덕'을 뜻하는 카프리스로 바꾸었다. 두 여자의 애증에는 성과 계급의 이슈는 물론 예술의 아이러니한 존재 조건까지 함축되어 있다.

"예술가들은 그들을 지원해주는 부유한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또 소외 당하게 되죠. 예술가는 저항하고, 권력기구에 반항하며,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것을 요구받지만, 사실상 생존을 위해서는 권력의 중개인들에게 헤어날 수 없는 위치에 있거든요. 이는 마치 자비심 많은 주인과 고아의 관계와 비슷해요."

작가는 재해석한 장면들을 실제로 연출해 사진 찍은 뒤, 그것을 다시 그렸다. 자신이 카프리스 역을 맡았고, 함께 작업해 온 젊은 여배우를 펠리시티로 캐스팅했다.

부유한 컬렉터의 집이 카프리스의 집이 되었고, 파티 장면에는 실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데미안 허스트와 요시토모 나라의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품은 '암사슴들'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현실에 대한 패러디다.

'행복과 변덕: 완결편'의 이슈들, 후원자와 예술가 간 관계와 예술가의 욕망이라는 주제는 딜리아 브라운이 꾸준히 다루어 온 것이다. '게릴라 라운징: 아스펜Guerrilla Lounging: Aspen' 시리즈는 작가가 부유한 컬렉터의 집을 빌려 파티를 열고 그 광경을 그린 그림이며 '첼시 그린: 2개의 자화상 Chelsey Green, Double Self Portrait '는 딜리아 브라운과, 딜리아 브라운을 연기하는 첼시 그린이라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것이다.

F Plays Pet to C, 'Hosting One of Many Summer Afternoon Cocktail Parties', 2007-2011
작가는 첼시 그린과 함께 전시회 오프닝에서 유명 인사처럼 포즈를 취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그 장면을 다시 그림으로 옮겼다. 유명 인사의 사진이 귀족의 초상화를 대체한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한편 동시대의 환상과 긴밀히 연관된 예술의 자리를 다시 묻는 작품이다.

딜리아 브라운의 개인전이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리고 있다. 신작인 '행복과 변덕: 완결편'은 물론 '첼시 그린: 2개의 자화상', 화장품을 통해 이상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여성의 욕망을 표현한 '살롱 스타일 자화상Salon Style Self Portrait' 시리즈가 선보인다.

전시는 8월7일까지 열린다. 02-519-0800

딜리아 브라운 인터뷰

작품에 자신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나는 항상 내가 아닌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나 스스로를 작품 속에 그릴 때 어떤 환상을 구현해내게 된다. 환상을 실현해볼 수 있는 역할 놀이 같은 것이다.

'F Lets C Bruch Out Her Hair', 2007-2011
'행복과 변덕: 완결편'에서 부유한 상속녀 역할을 맡은 이유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인물의 특성이 일부라도 이미 내 안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예술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상속녀 연기를 하는 게 더 흥미롭기도 했고. 부유하고 성숙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내야 한다는 점이 다른 작품에서와 달랐다.

영화를 재해석하고 장면을 연출해 사진 찍은 후 그림으로 옮겼다. 여러 단계를 거쳐 '번역'한 이유는 뭔가.

나에게 그림은 사진보다 더 중요한 형식이다. 사진은 즉시 이해하게 만들지만, 그림은 이해를 지연시킨다. 사진이 표면에 집중하도록 만들 때, 그림은 핵심을 보게 한다.

그림은 심지어 볼 때마다 달라진다. 내가 그린 그림인데도 하루는 잘 못 그린 것 같고, 다음날엔 잘 그린 것 같다.(웃음) 그만큼 주관적이고, 여러 겹의 층이 있는 것 같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관객이 경험하는 측면에서도 그림이 더 흥미롭다.

'She Stops to Examine the Painting and the Young Painter More Closely', 2007-2011
주인공의 이름을 '펠리시티(행복)'과 '카프리스(변덕)'으로 바꿈으로써 이야기의 의미를 풍성하게 했다.

도덕적 교훈보다는 재미를 주려고 했다. 카프리스라는 이름은 인물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속 찾아다닌다. 하지만 펠리시티는 아이러니한 이름이다.

그녀는 실제로 별로 행복하지 않다. 10년 전쯤 미국의 한 TV 드라마에 나온 펠리시티라는 인물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는데 아버지의 강요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됐다.

다음 작품 계획은.

미국에서는 주부들의 삶을 담은 '리얼 하우스와이브즈Real Housewives'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데, 이를 재현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혹은 내가 유명한 남자 배우의 연인이라고 가정하고 그 가상의 관계를 작품으로 옮겨보고 싶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