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후보작 수상작 중 16명 작가 40여 점 엄선

필립 라메트, 'lrrational Walk'
마르셀 뒤샹의 후예들이 왔다.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해프닝으로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마르셀 뒤샹만큼이나 발랄한 시선으로 무장한 프랑스 미술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

지난 7월 26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한 '오늘의 프랑스 미술: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Marcel Duchamp Prize' 전이다.

2000년 제정되어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의 후보작과 수상작 중 16명 작가의 40여 점을 엄선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프랑스 현대미술의 정수다.

프랑스 미술은 프랑스의 문화적 전통을 반영한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강하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고민이 깊다. 일상을 비트는 유머 감각과 사소한 것으로부터 우주를 이끌어내는 철학적 태도가 공존한다. 아포리즘처럼 간결한 인상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력을 거스른 남자가 관객을 맞이한다.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필립 라메트는 일련의 사진에서 나무의 옆면에 서 있거나, 벽의 옆면에 앉아 있는 등의 기예를 뽐낸다.

시프리앙 가이야르, 'The Lake Arches'
합성이나 조작이 아니다. 몸을 원하는 자세로 지탱해주는 기구들을 사용해 만들어낸 실재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 그리고 한계 없는 상상력을 실연하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가둘 수 있는 '휴대용 감옥', 허리에 두둑한 인격을 더해주는 '허리 군살', 당신의 주먹을 슈퍼 히어로의 주먹으로 단련해 주거나 무참히 으스러뜨려버릴 '펀칭 돌' 등의 작품도 웃음을 자아낸다.

어두운 방에서는 파리의 골목이 상영되고 있다. 골목 끝에서 돌연 나타난 구름이 관객을 향해 밀려 온다. 그 기세가 우람해 카메라가 아무리 뒷걸음질쳐도 소용없다.

구름은 결국 골목을 채우고 화면을 가리고 관객을 덮치고 만다. 순간 관객은 막막한 와중으로 빨려들어간 듯 아찔해진다.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로랑 그라소 작가의 비디오 작업들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지각적 체험으로 이어진다.

빨강과 파랑, 노랑의 면들이 수평, 수직선과 어울려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마티유 메르시에 작가는 몬드리안 회화를 설치 작품으로 번역해냈다. 재료들이 흥미롭다.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용품들을 활용했다. 예술과 산업을 접목시킨 것이다.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 'Untitled'
작품에서 느껴지는 균형감과 역동성은 몬드리안이 추구했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정신, 도시의 활기와 산업자본주의에 기반한 생산과 소비의 환경을 동시에 가리킨다.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 작가는 전시장 안에 거대한 연못을 설치했다. 물은 천천히 두 방향으로 흐르고, 다양한 크기의 도자기 그릇들이 떠다닌다. 유유히 움직이던 그릇들이 부딪혀 나는 청명한 소리는 우연과 즉흥의 시 같다. 운율은 예측할 수 없고, 반복되지 않으며,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 동시에 무한하다.

현대미술이 주목하는 도시 문제 역시 다양한 각도로 조명된다. 시프리앙 가이야르 작가는 도시의 폐허를 고대 유적처럼 접근하며, 니콜라 물랭 작가는 낡은 건물과 황폐한 거리를 공상과학물의 배경처럼 표현한다. 발레리 주브 작가는 인구와 지물이 밀집하고 나름의 질서로 체계화된 도시 경관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카미유 앙로 작가의 폐타이어 샹들리에 '부동의 에너지'에는 여러 해석의 단서들이 겹쳐 있다. 이 웅장하고 아이러니한 작품은 19세기 노트르담 성당 재건축 때 비올레르가 디자인한 샹들리에 '빛의 왕관'을 모티프로 했다.

당시 '빛의 왕관'의 아르누보 양식은 성당의 전통과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았다. 수명을 다한 고물로 이루어진 '부동의 에너지'는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자 양식과 재료의 충돌로 빚어진 불협화음이다.

마티유 메르시에, 'Homonculus'
시든 꽃 화분에는 '태양 아래서', 둥근 조명이 달린 문에는 '겨울 태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뒤집힌 집은 '안식처-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다. 집의 바닥에는 끊임없이 비눗방울이 뿜어져 나온다.

피에르 아르두뱅 작가의 작품들은 발상의 전환, 말장난, 키치와 아이러니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젼면에는 일상성이 있지만, 그 이면의 향수와 반(反) 낭만적인 정서는 시대적 특성이기도 하다. 유토피아의 실험이 실패하고, 모든 것이 진부해진 모더니즘 이후의 세계에서 예술은 상실과 사소한 안간힘의 은유가 되었다.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10월16일까지 이어진다. 02-2188-6000


로랑 그라소, 'Projection'
니콜라 물랭, 'Warmdewar'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