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트윈 INBETWEEN'전일본 설치 미술가 타카시 쿠리바야시 작품으로 보여줘

전시장은 마치 동굴 같다. 천장은 낮고 울퉁불퉁하다. 허리를 구부리고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빛이 쏟아져 내리는 구멍을 만난다.

그곳으로 머리를 쏙 내밀어 보면, 세상에, 환상적인 숲이 펼쳐진다. 일본 야마가타에서 자라는 낙엽송이 줄지어 있고, 사방은 눈으로 뒤덮인 듯 희디희다.

일본의 설치미술 작가 타카시 쿠리바야시의 'Wald aus Wald(Forest from Forest)'다. 구멍에 머리를 넣는 동작만으로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해주는 작품이다.

관객이 체험하는 것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구멍을 통해 숲을 올려다보는 것은 벌레의 시선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세계를 다시 접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장 한쪽의 간이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번에는 물속 풍경이 펼쳐진다. 'Unter the Wasser(Under the Water)'라는 작품이다. 눈높이에 고인 물이 위와 아래를 흐린다. 고요하고 깊다. 해저 동물이 보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Wald aus Wald(forest from forest)'
이런 반전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문명은 인간을 위해 세계의 다른 구성원을 희생시킨 역사였다. 동물과 식물의 입장, 생태계의 연유는 고려되지 않았다. 인간의 이해가 우선이었다.

타카시 쿠리바야시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우리의 편협함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시선은 곧 다른 감각과 해석이다. 인간 중심의 시야는 세계의 풍성한 의미는 인간의 좁은 시야 바깥에 있었다. 개발과 발전을 향해 달려온 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끊어 놓았다.

단절된 세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경계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문제도, 대안도 경계에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체득하는 것이 서로 다른 입장과 질서가 부딪혀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출발점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비욘드뮤지엄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비트윈 INBETWEEN> 전은 타카시 쿠리바야시 작가가 경계를 찾아다닌 여정의 요약판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가 주를 이루지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 인간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도 다루어진다. 통틀어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모색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Yatai Trip'은 일본어로 '야타이'인 포장마차를 모티프로 한 퍼포먼스 작업이다. 작가는 포장마차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동시에 그들 간 친밀함과 거리감을 드러내는 경계적 공간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설치할 수 있는 휴대용 포장마차를 만들어 전 세계 곳곳을 누빈다.

'Yatai Trip(Nepal)'
포장마차가 서는 곳마다 별일이 일어난다. 네팔 히말라야 산맥에 갔을 때에는 해발 고도 4천 미터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한계라는 점에 착안해 4천2백 미터 지점에서 포장마차를 폈다. 춤추고 노래하는 작가를 지켜봐 준 것은 야생 동물들뿐이었다. 작년에는 서울 청계천에 판을 벌였다가 경찰의 단속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도 'Yatai Trip'은 이어진다. 전시장 내에 포장마차가 설치되는 것이다.

지난 3월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작가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인간 중심 문명이 초래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고, 이번 전시에도 그 흔적이 역력하다.

"<인비트윈>은 지진이 일어난 3월 11일 이전과 이후 사이의 시대에 열리는 전시입니다. 일본 대지진은 시대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반항해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이전 시대를 그대로 진행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인간 역사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인지 규명해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작 'Iceberg'는 시대가 전환되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은유한 작품이다. 커다란 수조 안에 얼음 덩어리가 있고, 그 안에 식물들이 갇혀 있다. 식물들은 과거의 기억이고, 얼어 있다는 것은 기억이 멈추었다는 뜻이다.

'Yatai Trip(Korea)'
기억은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단면으로만 전시된 채 현재와 접촉하지 못한다. 그렇게 시대는 박제화되고, 역사는 흐른다. 참 익숙한 공식이다.

전시는 10월 16일까지 열린다. 02-577-6688


'lceberg sketch'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