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 통해 서로의 시 읽고 조언하고, 낭송회 등 문학 행사도

왼쪽부터 오은, 정한아, 서효인, 유희경
인스턴트, 천몽, 불편의 공통점은?

얼핏 이메일 아이디나 인터넷 카페 별명을 연상시키지만, 어떤 모임의 이름들이다. 2000년대에도 '문학동인'이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 발간된 시집을 들춰보면 80년대 결성된 '시힘', '21세기 전망'등의 이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시집이 출판시장에서 인기 있느냐와는 별개로, 최근 몇 년 사이 시 담론이나 시인들의 활동은 눈에 띄게 많아졌고, 이 활동의 중심에 시동인이 있다.

이 중 가장 젊은 시동인이 '작란'(作亂)이다. 1975년생 정한아 시인부터 1982년생 오은 시인까지 평균 나이 32.5세의 모임으로 작년에 결성됐다.

모임이 만들어졌을 당시 오은 시인을 제외하고는 시집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2002∼2008년에 등단한 이들은 시동인이 만들어진 지난해 서효인 시인이, 올해 유희경, 정한아 시인이 차례로 시집을 내면서 이제 멤버 전원이 제 이름의 시집을 갖게 됐다. 김민정, 김경주, 안현미 등이 속한 시동인 '불편'이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을 대표했다면 '작란'의 멤버들은 포스트 미래파를 대변하고 있다.

지난 주 화요일 저녁 '작란'의 멤버들을 만났다. 정한아 시인의 첫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 출간을 맞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작란 멤버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뜻에 따라 몇 주일 미뤄 만났다.

인사를 나눈 뒤, 이 동인의 '자칭 마스코트'인 오은 시인이 'since 20100120'이라고 적힌 작란 노트를 준다. "특별판으로 5만 권만" 만든 거란다. 노트 뒷면 작란의 뜻이 적혀 있다.

'①난리를 일으킴 ② '장난'의 잘못 ③21세기, 한국에서 가장 쿨한 동인.'

대다수 시동인이 친목모임으로 변한 것과 달리 '작란'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서로의 시를 읽고 조언해주고, 낭송회 등 문학 행사를 개최하기도 한다. 지난 봄에는 멤버들이 공동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운영하는 문화교육센터 '문지 사이'에서 시창작 강의를 10주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쿨한 동인

'작란은 어떻게 결성됐나?'부터 물어야겠다. 처음에 김소연 시인이 유희경, 오은 시인 두 사람에게 같이 동인을 해보라고 추천했다고 들었다.

오은) 맞다. 그리고 나서 유희경 시인이 '정한아 시인 멤버로 어때?'라고 물어서 나도 좋다고 했고, 얼떨결에 정한아 시인도 오케이 했다. 효인이 형도 그렇게 들어왔다.

유희경) 처음에 정한아 시인은 박사 논문 쓰겠다고 거절하는 뉘앙스를 풍겨서 우리 셋만 만났는데, 셋이 있던 카페로 정한아 시인이 들어왔다. 원래 휴대폰 충전하러 들어왔던 건데, 어쨌든 4명이 모이게 됐고, 그날 같이 술 먹고 동인하게 됐다.

시동인 다 모이면 주로 뭐하나?

오은) 엠티 간다. 인터넷 비공개 카페를 만들어서 글 주고 받고, 의견도 나눈다.

유희경) 활동이 많지는 않은데, 어떤 계획을 세우면 꼭 실천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노트를 만든다거나(웃음), 여행을 가자고 하면 한 번에 꼭 간다거나.

서효인) 동인 모이면 주로 논다고 생각하는데(웃음), 시 얘기도 한다. 그동안 읽었던 시집 나누기도 하고, 서로 쓴 시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한다. 두리반에서 낭송회를 했고, 올 봄에 문지 사이에서 시 창작 강연을 하기도 했다. 시 동인지도 낼 생각이다.

정한아) 80년대는 시동인이 결성되면 꼭 동인지가 함께 발간됐는데, 요즘 동인들은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었다. 시대 조류와도 관련 있겠지만, 시동인 활동이 멤버들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하면, 가시적인 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동인지를 만들자고 했다.

'불편'이나 '천몽'의 경우 시동인의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각자 개성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이지만 시동인의 이름만 듣고도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작란'은 스펙트럼이 꽤 넓은 것 같다. 4명의 공통점은 뭔가?

정한아) 극적인 형식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느냐는 각자 스타일이 다르지만. 이를테면 오은은 상황극 같은 설정의 시를 쓴다. 희경이의 시를 보면 베케트 희곡같은 느낌이 든다.

효인이는 부조리극을 쓰고 있고, 나는 모놀로그 같은 작품을 쓴다. 동인 모두 시의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형식적 전위만 취함으로써 극단에 서려는 언어지상주의자는 없는 것 같다.

서로 만나면 시합평도 해주나?

유희경) 시를 읽고 감상을 말해주지만, 구체적이진 않다.

서효인) 등단 전이나 직후에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서 시 한편 한편에 대해 평을 하지는 않는다. '네가 쓰는 시가 전반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방향으로 써봐라' 조언하는 정도다.

동인 시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

오은) 물론이다. 정한아의 시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다. 첫 시집이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나도 초심을 버리지 말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효인이의 시적 실험을 보면서 나도 안주하지 말고 써야겠다, 생각했다.

서로의 시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유희경) 내 첫 시집을 구성할 때 서효인의 시집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효인이 시집은 나한테 위안이 되는 시집이다. 어떤 형태든 자기 비극성을 갖고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시인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 시집을 좋아한다. 서효인의 시는 화자와 시인이 닮아 있다. 테크닉으로 보면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시적 태도는 고귀하고 예쁜거다.

서효인) 이제까지 많은 시인들이 한국어에 천착했다 하지만, 시인의 사고, 순간의 상황, 역사, 자기 자신에 대해 천착했다.

오은의 시집은 본격적으로 우리말에 천착한 시집이다. 우리말이 시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한편으로 전위적이지만, 또 한편으로 재미있게 읽히기도 한다. 오은의 시는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오은) 발랄함, 경쾌함, 에너지 같은 첫 시집이 갖춰야 할 미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한아의 첫 시집이 이런 미덕을 모두 갖춘 시집이다.

시집이 나오고 7,8번쯤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처음 읽을 때는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느껴지다가 두 번째는 근대의 표상이 보이는 식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던져주는 시집이다.

정한아) 유희경의 시집은 우리 넷 중에서 가장 튀는 시집이다. 가장 서정적인데, 모던하다. 서늘한 느낌도 있다. 해설에 기형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유희경의 시가 기형도에게서 영향의 받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이 계보가 끊어져 있었다. 기형도, 이창기처럼 서늘하면서도 시적인 향을 맡게 해준 80년대 시인들의 시는 이후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희경의 시는 이런 시인들의 시를 환기시킨다.

정한아. 1975년생.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연세대 국어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2006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문학동네)

유희경. 1981년생. 서울예대문예창작과와 한국종합예술학교 서사창작과 졸업.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문학과지성사)

서효인. 1981년생. 전남대 국어국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의 행동지침>(민음사)

오은. 1982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 <호텔타셀의 돼지들>(민음사)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