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김미월의 '서울 동굴 가이드', 김애란의 '칼자국'배우가 원작 읽으며 시작ㆍ청각 등 공감각적 실험 더해 관객 상상력 증폭

'서울 동굴 가이드' 김미월 작가
활자 텍스트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날것의 상상력이다. 무대예술이나 영상예술은 상황을 구체화시킨 탓에 감상과 평가만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반면 소설로 대표되는 활자 텍스트는 원형 그대로의 상상력을 독자의 머릿속에서 무궁무진하게 발동시킨다.

최근 빈번해지고 있는 낭독공연의 배경도 이런 활자의 매력과 맞닿아 있다.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배우들이 대본을 읽는 형식의 낭독공연은 조명이나 음향 등 무대장치를 최소화한 무대에서 언어의 힘만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30일부터 산울림소극장에서 시작되는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순히 대본이나 원작 소설을 읽어내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문학성과 연극성이 공존하는 무대로 꾸민 것이다.

무대로 간 단편소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이라는 길고 거창한 제목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이 공연의 콘텐츠를 좌우하는 예술가들의 면모다. 총 3편의 작품이 2주 동안 차례대로 이어지는 이번 공연에서 활자 텍스트를 내놓은 이들은 현재 한국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들인 김연수, 김미월, 김애란이다.

'서울 동굴 가이드' 김한내 연출가
이번 공연에서 김연수 작가는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창비)의 수록 작품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내놨다.

소설은 이혼한 전처와 걸었던 북촌 길을 혼자 다시 걸으며 상념에 잠기는 화자의 뒤를 따라간다. 밀도 높고 재치 넘치는 문체로 독자와 평단 모두의 관심을 받는 김연수에게 이 단편소설집은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의 작품 세계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김미월 작가는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서울 동굴 가이드>로 관객과 만난다. 소설은 고시원에 사는 여자의 사정을 중첩적으로 다룬다.

김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최연소로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후 제1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깊은 문제의식과 높은 완성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신작을 내놓으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김애란 작가는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 지성사) 수록 작품인 <칼자국>을 무대에 올린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온 딸이 칼을 통해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2008년 당시 "현실의 변화 방향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는 평으로 제9회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김연수 작가
낭독공연도, 연극도 아니다

이런 이들의 소설을 무대에서 새롭게 되살리는 것은 온전히 젊은 연출가들의 몫이다. 현재 대학로가 가장 주목하는 세 연출가들은 단순히 배우의 음성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후각과 미각까지 자극하는 공감각적 실험으로 독자 관객들의 상상력을 배가시킬 예정이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르는 김애란의 <칼자국>은 그녀의 같은 과 동기였던 추민주 연출가의 손을 거친다. 지난 2005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25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창작뮤지컬 <빨래>로 유명한 추 연출가는 이번 공연에서 소설 속 주인공의 '허기'에 집중할 예정이다.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그 허기를 말하려고 한다. 또 그 허기를 달래주었던 음식과, 음식이 만들어질 때 나던 소리와 냄새를 연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추 연출가는 공연에 직접 출연해서 낭독하는 배우들 옆에서 칼국수를 직접 끓여 완성되면 배우와 관객과 나누는 등 소설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연출을 구상하고 있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대표인 성기웅 연출가는 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을 맡았다. 그는 배우가 보면대에 소설을 놓고 낭독하는 기존 방식에서 출발하되,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소설의 문학성과 연극의 공연성을 증폭시키는 형식을 시도한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성기웅 연출가
원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기본적으로는 남자배우가 주된 낭독자가 되지만, 전처의 역할이나 기억, 느낌, 감정의 묘사 같은 서브텍스트 부분은 여자배우에게 맡긴 것. 성 연출가는 "1인칭 소설에 숨어 있는 다층적인 겹,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대비시켜 다성적인 울림을 자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는 김미월 작가의 <서울 동굴 가이드>는 떠오르는 신예 연출가인 김한내가 맡았다. 그녀는 한 명의 화자만 등장하는 소설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설 속 다른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로 만들어 총 세 명의 배우를 무대에 올린다.

김 연출가는 "소설 속의 '인공 동굴' 과 '고시원', 그리고 꽉 막혀버린 '소화기관'의 중첩된 이미지는 무대 위에서 극단적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의 홍보를 담당하는 배정자 프로듀서는 "감정은 싣되, 극적인 표현은 자제하는 이번 공연은 독자에게 주어진 상상의 여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행간에 숨은 재미와 의미를 새로운 상상력으로 재발견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칼자국' 김애란 작가
'칼자국' 추민주 연출가
성기웅 연출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