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이름'과 '장소' 나침반 삼아 디자인의 개념 재정의 하는 시도들

'포기의 네트워크'
"이것은 디자인일까요, 아닐까요?"

기껏 디자인비엔날레를 보러 왔더니 되레 묻는다. 전시장 곳곳에 붙어 있는 장치들이 투표를 권한다. 관객들은 엄지손가락으로 "예" 혹은 "아니오"를 눌러 참여할 수 있다. 결과는 일일이 집계할 필요가 없다. 관객의 대답에 따라 로비의 벽에 다른 영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엄지 투표'라는 이 작품은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를 함축해 보여준다. 디자인 과잉의 시대에 디자인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이다. 승효상 예술감독은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디지털 시대에 디자인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화두로 삼은 것은 도덕경의 한 구절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다. 옮기면 '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은 아니며, 이름이라고 하는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풀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와 법칙, 지식 체계와 현상이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이 구절을 응용했다.

'도道'를 그림, 넓게는 디자인을 뜻하는 '도圖'로 바꾸었더니 '도가도비상도 圖可圖非常圖', 즉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가 됐다. 그래서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통념에 비추어 명백한 '디자인'보다는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상상되고 실현되어 온 일들로 가득하다.

'바이크 행어'
결과보다 과정이, 계산할 수 있는 가치보다 디자인을 매개로 한 관계들이 더 잘 보인다. 관객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하고, 마침내 나름대로 '이런 것도 디자인이구나', '디자인으로 이런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구나'를 깨닫게 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지난 9월1일 시작됐다.

이름과 장소로 디자인을 탐색하다

디자인을 탐색하는 두 개의 나침반은 '이름'과 '장소'다. 디자인 뒤에 유명 디자이너가 있다는 통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세대와 국경을 넘는 영향력을 가진 디자인을 만들어내지만, 어떤 디자인에는 원작자가 없다. 건축, 조경 디자인은 장소와 밀접한 연관을 맺지만, 어떤 디자인은 물리적 환경 없이도 공동체를 구성한다.

독일 디자이너 디륵 플라이쉬만은 개성 공단에서 만들어진 옷, 가상 부동산, 태양 에너지 등을 파는 가게 '나의 콘셉트 가게'를 차렸다. 대기업이 주도하고 불공정한 공정을 담보로 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적 실험이다.

안지용, 이상화 디자이너가 고안한 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환경을 자전거 친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 디자인. 20~36대의 자전거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체인 형태로 전기도, 넓은 공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메데인,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정부 운동가들이 사용하는 '급조폭발물 장비'의 경우에는, 실체는 있지만 원작자가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는 유포하지 말 것, 감시 당할 수 있음"이라는 주의사항이 붙어 있는 '비폭력 혁명 디자인'은 또 어떤가. 이집트 민주화 운동가들이 몸을 보전하면서도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한 이 투쟁 전략의 배후에는 시대와 사회가 있다.

할렘 지역을 활력 넘치는 도시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콜롬비아 메데인시의 공공 디자인 와 관광지인 오스트리아 알프스 마을의 지역적 특성에 대한 '알프스 마을 이미지 디자인' 등이 장소와 결합한 디자인 사례라면 시드니 각지의 건축가, 디자이너, 철학자, 사진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는 원칙 하에 나눈 창조적 대화를 바탕으로 한 는 장소성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디자인 사례다.

대지진으로 고통 받은 일본 동북부 지역의 재건을 위해 나선 이들을 이어주는 기부 디자인 '소셜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와와 프로젝트'는 장소를 매개로, 장소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만드는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디자인, 일상의 상상력

디자인의 경계는 모호할수록 흥미롭다. '사후 디자인', 까지 전시된다. '사후 디자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고인을 추모하는 상업 서비스들이고, 은 각국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형의 기술이다.

'처형 디자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자신이 화장하는 과정을 찍은 '화장 변신 동영상 강좌', 운동선수들의 체격과 체형을 지칭한 은 현대사회에서 시각적이고 신체적인 경험까지 디자인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일상이 디자인의 산물이자 과정이고, 모두가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인식할 때 디자인의 미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적극적으로 모색될 수 있다.

문명의 속도를 일부러 늦추기 위해 손님이 직접 재료를 마련하고 빵을 굽도록 만든 , 환경 재앙에 대비해 자급자족을 실험하는 '치킨 프로젝트' 등의 아이디어는 현실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게 한다.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10월 23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 광주 읍성을 현재에 되살리는 컨셉트로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광주 시내 곳곳에 작은 건축물을 세운 도시 재생 프로젝트 '광주폴리'도 이 기간 내 완성되어 시민과 만난다.


'운동선수 신체 디자인'
'슬로우 패스트푸드 식당'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