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청 , 영화 등 통해 재조명

안은미무용단의 <프린세스 바리>
무당은 종교인일까, 예술인일까. 무당이 굿을 할 때 추는 춤을 무무(巫舞)나 무속무용(巫俗舞踊)이라고 일컬으며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보면, 무당은 분명 예술가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무당에 대한 인식은 예술가와는 거리가 있다. 무당을 소재로 한 공연과 영화들은 이런 무당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며 예술가로서의 무당을 다시 소개하고 있다.

한국 대표 공연예술로 평가받는 무속 신화

지난달 말 영국 에든버러의 한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가 길게 이어졌다. 박수의 대상은 막 공연을 마친 . 한국 무용단 최초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되며 화제를 뿌린 안은미무용단의 이 작품은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나 프로그램 안내 책자에도 비중 있게 소개되며 행사 내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프린세스 바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 신화인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무당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이 담겨 있다. 지난 2007년 <바리-이승편>을 초연하고 지난해 후편인 <바리-저승편>이 올려져 완성된 작품이다.

영화 <영매>
이번 공연의 성과는 단순히 한국의 무용단이 정식 초청됐다는 사실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공연예술의 기존의 전통 관념인 '원형 보존과 그 전달'에 머물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해 성별과 시간을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무당을 외국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켰다는 데 있다.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와 일렉트로니카의 느낌까지 자아내는 풍부한 음악은 현대의 관객의 감성과도 훌륭히 맞아떨어졌다는 현지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동안 무속 문화는 전통예술의 담론 안에서도 대중의 편견과 맞물려 주류로 나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판소리나 시나위, 살풀이춤 같은 대표적인 전통예술의 뿌리도 결국은 무속 문화에 있다.

무당들의 굿판에서 남도의 무악(巫樂)인 시나위와 함께 추는 것이 살풀이춤이고 이때 부르던 노래는 이후 판소리가 됐다. 그래서 이번 <프린세스 바리> 공연은 이런 무속 문화의 잠재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무속인' 아닌 '예술가' 무당 담은 영화

영화 <사이에서>
이제까지 현실의 무당의 삶을 담아낸 필름들은 주로 다큐멘터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이 박기복 감독의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3)다.

감독은 막연하게만 인식되고 있는 한국의 무속을, 밀착된 카메라로 옆에서 바라보듯 성실하게 고증한다. 경북 포항의 동해안 별신굿 풍어제를 비롯해 서울 이북의 강신무와 한강 이남의 세습무, 당골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나는 진도 씻김굿의 과정은 무속에 대한 인식을 재설정하게 해준다.

반면 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2006)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신내림의 운명을 힘겹게 버텨내는 무속인들의 삶에 무게를 뒀다. 무속인으로서의 무당에 초점에 맞춰진 까닭에 당시 관객의 반응은 엇갈린 감이 있었다.

한편 현재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간 김정욱 감독의 <비단꽃길>은 본격적으로 예술가로서의 무당의 모습에 집중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서해안배연신굿, 대동굿 기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에 선정된 김금화 만신의 여정을 따라간다.

김정욱 감독은 "무당이 단순히 점을 치고 작두를 타는 존재라는 편견이 많은데, 춤, 소리, 퍼포먼스 등 예술가로서의 측면도 크다. 이런 모습들을 지난 2년간의 촬영에 담아냈다"고 밝혔다.

영화 <비단꽃길>
선입견을 제거하고 보면, 분명 무당의 삶은 여느 예술가의 평탄치 않은 인생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영화 속 김금화 만신의 삶도 그랬다. 열네 살에 간 시집과 이후 두 번의 이혼. 한국 대표 만신이 되기까지 천대받던 시절의 모습도 빠짐없이 회자된다.

하지만 <비단꽃길>은 <사이에서>보다는 <영매>에 가까운 태도를 취한다. 무당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린다는 것이 대전제인 만큼, 무당의 신기나 신내림 부분은 의도적으로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 그래서 이후 김금화 만신에 대한 카메라의 포커스는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에 맞춰진다.

하와이에 굿당을 차린 독일인 신딸과 펼치는 축원굿, 프랑스 아시아·아프리카 전통예술 공연장 깨브앙리 박물관 공연 등은 종합예술로서의 굿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오늘날 무당을 본격적인 예술가로 인정하는 풍토는 기존 예술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무속 문화에 관심을 갖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국문학계가 더 활발하다.

'서사(narrative) 무가'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기 때문. 그래서 이 같은 무당에 대한 예술적 조명들은 아직도 미신으로만 무속 문화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