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확대 등 공격적 영얼전략으로 소매금융시장 공략, 한미은행 인수 움직임 등 심상찮은 행보에 금융권 '초비상'

씨티은행 도발에 국내은행 "코드 오렌지"
대출확대 등 공격적 영얼전략으로 소매금융시장 공략
한미은행 인수 움직임 등 심상찮은 행보에 금융권 '초비상'


대기업 과장인 K(38)씨는 최근 급전이 필요해 은행 몇 곳을 전전했지만 번번이 실망스러운 답변 뿐이었다. “이미 대출이 많이 잡혀 있어서….” “기껏해야 1,500만원 정도 대출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은 곳은 외국계인 씨티은행. 언젠가 씨티은행 대출 담당 직원에게서 받은 이메일 한 통을 기억해 낸 때문이었다. 문구가 꽤 자극적이었지만, 외국 은행의 대출 심사가 훨씬 까다로울 것이라며 무심코 지나친 터였다.

연봉 6,000만원에 신용 대출을 포함해 은행권에 9,000만원의 대출금을 안고 있던 K씨에게 은행측이 제시한 신용대출 한도는 4,000만원. 다른 은행 제시액 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금리도 타 은행보다 저렴한 수준인 연 9.4%. K씨는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3년 대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세계 1위 은행 씨티은행이 한국 소매금융 시장 공략에 가속을 내고 있다. 경기 불황 속에 국내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부지런히 낮출 때 거꾸로 금리를 인상하고, 신용불량자 확산으로 대출 축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공격적으로 대출 확대에 나섰다. 역(逆) 발상 전략이다. ‘씨티은행 = VIP 고객 전용 은행’이라는 기존 공식도 일순간에 깨뜨렸다. 금융계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씨티은행의 공격적 행보에 어떤 의도가 깔려있는지, 또 공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들만의 은행, 씨티은행

씨티은행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67년, 무려 36년 전이었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 지점 수만도 3,400여개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은행의 등장은 열악한 국내 은행권에 위협적인 존재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씨티은행의 영업은 예상 외로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그들의 주력 업무라던 소매 금융은 외면한 채 기업 금융에만 조금씩 손을 댔을 뿐이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의 표현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다.

씨티은행이라는 이름이 개인 고객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86년 소비자 금융 업무를 개시하면서부터 였다. 국내 은행 최초의 개인재무관리(Private Banking) 업무 도입(89년), 365일 입출금 자동화기기(ATM) 서비스 시행(90년), VIP 고객들만을 위한 ‘씨티골드’ 프로그램 시작(91년), 씨티폰 뱅킹 및 직불카드 서비스 시행(93년)…. 국내 고객들에게 선진 금융의 실체를 하나 둘 선보였고, 소매 금융 영업에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던 국내 은행들에게는 벤치 마킹의 대상이었다.

씨티은행의 주 고객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고액 자산가들. 이는 12개 지점 중 무려 7개 지점이 압구정, 대치, 강남, 방배, 분당 등 강남권에 포진하고 있는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씨티은행 10년 고객이라는 H변호사는 “지금은 시중 은행들도 PB 업무가 활성화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1대 1 자산 관리를 해주는 곳은 씨티은행 밖에 없었다”며 “자산 내역을 샅샅이 파악하고 그에 맞게 플랜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든든한 재무 비서를 둔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작은 고추가 맵다

선진 금융 기법으로 무장한 씨티은행의 철저한 손익 및 위험 관리는 실적으로 입증된다. 2003년9월 말 현재 국내 씨티은행의 총수신은 5조4,790억원. 규모로만 따진다면 국내 최대 은행이라는 국민은행(143조648억원)의 3.8%에 불과한 것은 물론, 지방 은행인 대구은행(14조7,853억원)에도 크게 못 미친다. 그간 규모 키우기에는 별다른 신경을 쏟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건전성 지표는 군계일학이다.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2.38%로 10.69%의 국민은행을 크게 앞선다. 전체 여신 중 부실 여신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여주는 고정이하여신비율(2.56%)이나 무수익여신비율(1.56%) 역시 각각 3.98%, 3.14%인 국민은행보다 월등히 낮다.

수익성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규모에서는 국민은행의 3.8%에 불과한 씨티은행의 충당금 적립전 이익은 3분기까지 1,348억원으로 국민은행(2조4,73억원)의 6.5% 수준에 달한다. 특히 점포의 효율성을 볼 수 있는 점포 당 수신액은 4,566억원으로 1,130억원 수준인 국민은행을 4배 이상 앞서고 있다.

이젠 규모 확장이다

‘씨티가 달린다(Citi Runs).’ 씨티은행은 2003년 5월 무렵 이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안정성, 수익성에만 심혈을 기울여 왔던 그간의 영업 방식에서 탈피해 공격적인 영업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고객이 한정돼 있고 문턱이 높고 접근이 어렵다는 인식이 최대의 적이向楮?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타깃 영업에서 탈피해 고객층을 다양화할 필요성을 느낀 거죠.” 박순희 씨티은행 소비자금융부장의 설명처럼 그간 씨티은행은 소수 부유층 고객들을 위한 은행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 직장인은 “은행에 볼 일이 있을 때 길을 가다 아무 은행 지점이 보이면 들르게 되지만 씨티은행을 비롯한 외국 은행들은 그렇지 않았다”며 “어쩐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은행 같은 느낌이 강했다”고 말했다.

일단 달리기 시작한 씨티은행에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심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씨티은행이 대출 영업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변신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금리 높아 대환 원하시는 분, 대출 과다로 은행권 추가 대출 불가능한 분, 현금서비스 대환 원하시는 분….’ 혹 불법 대금업체의 전단지 내용처럼 보이는 이것은 씨티은행이 인터넷과 이메일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있는 대출 광고의 일부다. 통상 금융권 대출이 연봉의 2배를 넘을 경우 추가 대출을 해주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대출이 연봉의 2배를 넘어도 추가 대출을 해준다’고도 하고, 심지어 바쁜 고객을 위해서는 내방 접수까지 해주겠다고도 한다.

LG카드 사태가 한창 시끄럽던 11월 말에는 잔뜩 몸 사리기에 나선 국내 카드사와 달리 신규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이벤트 행사에 돌입했다. 신규로 카드를 발급 받음과 동시에 회전식(리볼빙) 현금 서비스를 신청한 회원에게 최저 연 12.9%인 금리를 9.9%로 낮춰주고, 카드 총한도를 100% 현금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한도를 대폭 확대했다.

예금 유치에도 잔뜩 열을 올렸다. 상반기 ‘씨티은행 슈퍼정기예금’에 대해 1억원 이상 예치 시 연 5%의 확정금리를 한시 적용키로 했고, 10~11월에도 1년 정기 예금에 대해 연 4.6%의 국내 은행권 최고 금리를 약속했다.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4% 이하까지 떨어뜨렸던 것과는 180도 대조적인 행보였다.

한미은행 인수가 최대 관건

국내 은행들은 씨티은행의 공격적 행보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전세계 금융 시장을 평정한 씨티은행이 공세적으로 영업을 펼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역시 절대 강자로 부상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은 최근의 영업 태도 변화가 한미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 인수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데 있다. 씨티은행은 스탠더드차터드은행과 함께 현재 한미은행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힐 정도로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한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국내 금융기관 인수 등 영업망 확대에 앞서 고객 저변 확대를 통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미 씨티은행은 대전, 대구, 광주 등 세 곳에 신규 지점 설립을 인가해 달라며 금융감독원에 신청을 해놓은 상태. 현재 12곳의 지점이 부산지점을 제외하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본격적으로 지방 공략을 선언한 셈이다. 게다가 2002년7월 대부업을 하는 자회사 씨티파이낸셜을 출범시켜 서민들을 대상으로 연 20~40%의 고리 대출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고급 은행’으로 고착화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내 시중은행장들은 이런 씨티은행의 행보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한마디씩 거드는 형국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최근 “씨티은행과 HSBC와 같은 세계적 은행들이 전국 점포망을 갖게 되면 국내 은행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김승유 하나은행장도 “금융 정책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메이저 금융기관을 외국 자본에 넘기게 되면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100년 이상 축적해 온 선진 금융 기법에 더해 국내 금융기관과 맞먹는 규모까지 갖출 경우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마켓 리더십 확보 기회”

일각에서는 “왜 하필 지금”이라며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금융계 관계자는 “3~4년 전 경기가 좋을 때 무차별적인 예금 확보 및 대출 경쟁을 벌이던 국내 은행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며 “잔뜩 몸을 사려야 할 시점에 왜 무리한 영업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갸우뚱했다. 카드사 위기는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신용불량자는 400만명을 향해 치솟고, 부동산 담보 가치가 갈수록 하락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누가 봐도 대출을 축소하는 것이 금융의 ‘ABC’라는 얘기다.

하지만 한때 씨티은행에 몸 담았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범상한 잣대로 씨티은행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영업을 확대하더라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진다”고 일축한다. 예를 들어 대출을 확대하더라도 국내 은행처럼 무작위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심사를 통과한 우량 고객들에게 대출 한도를 높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국내 뵉碩湧?보수적인 영업을 하는 시점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석 씨티은행 이사도 적극 동조한다. “특정한 상황에 따라 전략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이 잠재 고객에 대한 마켓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국민은행을 필두로 한 국내 은행들과의 대혈전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씨티은행과 국민은행 지표 비교    (2003년9월말 현재) 

국민은행 씨티은행 비고

총수신(억원) 1,430,648 54,790 3.8%

총여신(억원) 1,440,205 52,039 3.6%

충당금

적립전이익(억원) 20,473 1,348 6.6%

점포수(개) 1,266 12 0.9%

점포당 수신액(억원) 1,130 4,566 4.04배

BIS비율(%) 10.69 12.38 +1.69%P

고정이하여신비율(%) 3.98 2.56 -1.42%P

무수익여신비율(%) 3.14 1.56 -1.58%P


입력시간 : 2004-01-0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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