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제2 김우중' 되나검찰 출국금지 하루 전 출국, 대선자금 수사 피한 도피성 외유 시각

"하필 이때…, 내빼신 건가요?"
김승연 회장 '제2 김우중' 되나
검찰 출국금지 하루 전 출국, 대선자금 수사 피한 도피성 외유 시각


검찰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새해 1월 2일. 그 시각, 김 회장은 부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태평양 상공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 날아 가는 파리도 잡는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이 그 사실을 확인한 것은(또는 알았다고 발표한 것은) 무려 나흘이 지난 6일이었다.

관련기사

  • 도피 4년째, 잊혀진 김우중 신화
  • 한화에 대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의 첫 타깃이 SK를 향해 조준됐을 때 많은 증권가 정보지들은 가장 유력한 제2의 후보로 한화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 최종 타깃은 한화가 될 것이다”, “ 적어도 한화는 그물망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등 예견이 잇따랐다. DJ 정권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는 얘기에서부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든든한 후원군이라는 얘기까지,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김 회장의 6개월 간의 도피성 출국을 둘러 싸고 ‘제2의 김우중’ 의혹이 증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문 투성이 출국

    한화측의 ‘ 해명’은 이렇다. 김 회장이 2000년부터 한미교류협회장을 맡아 오면서 지난해 10~11월 미 스탠퍼드대학 측과 연수 얘기가 오고 갔고, 12월 이 대학의 아시아퍼시픽 리서치센터의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6개월간 연수를 가기로 최종 확정했다는 것이다. 연수 주제는 ‘한ㆍ미 관계의 미래와 NGO(비정부기구)의 역할’이란다. 한화 관계자는 “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공교롭게 출국 금지 시기와 맞물리면서 오해를 사고 있다”며 “국내 사업들을 그대로 놔두고 도피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허나 이를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 알리바이’에 허술한 구석이 너무 많다. 출국을 불과 하루 앞두고 한화측이 지난해 12월 31일 언론에 배포한 김 회장의 신년사에는 이렇게 언급돼 있다. “ 우리는 지금 당장 내일의 생존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중략)… 끊임없이 약진하는 생명력 있는 기업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속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절대절명의 생존 과제가 될 것입니다.”

    한 직원은 “ 이런 신년사만을 달랑 남기고 총수가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훌쩍 해외 연수를 떠난다면 고통을 달게 감수할 직원들이 과연 얼마나 될 지 의문”이라고 했다. 설령 긴박한 시기가 아니라 해 두자. 그러나 재벌 총수가 회사를 6개월씩이나 비워 두고 한가롭게 미국 연수를 떠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지난해 대전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관람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한화 구단주인 김승연 회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검찰이 10대 그룹에 대한 수사를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 김 회장 스스로 검찰의 소환 대상이 될 것임을 몰랐을 리도 없다. 김 회장이 연수를 타진했다는 지난해 10~11월은 검찰이 SK에 대한 수사를 대선 자금 전반의 수사로 확대하던 시기. 특히 한화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서서히 들이대고 있던 즈음이었다. 6개월 정도의 공백이면 총선도 끝난 후여서 검찰의 날카로운 공세를 비껴갈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공모’ 의혹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수?대상에 오른 이들이라면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는 검찰이다. 이미 2개월 전부터 한화에 대한 수사를 벌여 온 마당에, 김 회장의 출국 사실을 검찰이 몰랐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힘들다. 설사 몰랐다 해도, 출국 금지 하루 전날 출국한 것은 대단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사전 정보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룹 구조조정본부 직원들조차 모르게 급히 출국했던 김 회장이 아직 대학측에 등록조차 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스탠퍼드대학 측은 지난 6일 국내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 개강을 이미 했지만 김 회장은 아직 연락을 해 오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생명 인수 의혹 풀릴까

    검찰은 “ 한화 수사는 (기업 수사가 아니라) 불법 대선 자금이 초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 플러스 알파’가 있을 것이란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검찰이 6일 한화그룹 압수수색 당시 이례적으로 김 회장의 개인 사무실까지 수색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한화의 혐의가 여타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한화를 둘러 싸고 지금까지 제기돼 온 의혹은 여러 갈래다. 우선 한화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하나다. 지난해 춘천지검 영월지청의 강원랜드 공사 비리 수사 때 계열사인 한화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해 거액의 대선자금을 냈다는 의혹이 일었고 이 사건은 곧 바로 대검 중수부로 넘겨졌다. 중수부가 이 사건을 일선 검찰(대전지검 특수부)에 재배당한 것은 3개월여 뒤. 그것도 하청업체인 대덕테크노밸리㈜에 공사비를 부풀려 지급한 뒤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사건에만 한정했다. “ 대검이 사건을 쥐고 있는 동안 한화건설에 대한 계좌 추적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토지공사와의 특혜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지난해 9월 토공이 국회 건교위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토공은 98년 한화측으로부터 939억원에 사 들인 군자 매립지 68만6,000평을 2000년3월 되팔면서 공시지가(2,404억원)의 54%에 불과한 1,305억원을 받고 한화측에 수의 매각 했다. 특히 매각을 전후해 잡종지였던 지목이 도시 개발예정용지로 용도 변경까지 이뤄져 의혹을 더욱 부풀리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의 초점은 2002년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를 둘러싼 의혹들이 이번 검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될 것인지 여부다. 그룹 전체가 경영 부실에 허덕이고 있었고, 한화종금 등 금융 계열사 부실로 1조5,000억원의 공적 자금 투입을 초래한 전력을 둘러 싼 자격 시비가 의혹의 핵심이다. 대한생명 인수를 앞두고 정부가 요구한 ‘ 부채 비율 200%’의 가이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한화 등 3개 계열사를 통해 조직적 분식회계를 했다는 참여연대 측 주장도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내릴 수 있다. 특히 3조5,000억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8,000억원이 넘는 당기 순이익을 내는 건실한 회사로 변모한 대한생명을 불과 8,000억여원에 인수함으로써 헐값 특혜 매각 시비도 들끓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2002년 9월 ‘ 국정원 도청 자료’를 증거로 들이 대며 한화측이 청와대와 민주당 핵심 인사들에게 대한생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로비를 펼쳤다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당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유재훈 공자위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 가격 면에서도, 인수 자격 면에서도 한화는 도저히 대생을 인수할 수 없는 곳이었다”며 “ 총 8명의 공자위원 중 3명의 민간위원이 강력히 반대했지만 정부측 위원들이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한화 인수를 밀어 붙였다”고 말했다.

    63빌딩 김승연 회장 사무실앞에서 한화그룹 관계자들이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마당발의 대선자금 규모는?

    문제는 이런 의혹들이 수사의 본류인 대선 자금과 얼마나, 또 어떻게 연결돼 있느냐다. 마당발로 소문난 김 회장은 정치권 곳곳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SK, 삼성, LG, 현대차 등을 넘어서는 자금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흘러 나온다.

    김 회장의 정권 인맥과 관련한 정설은 한나라당과의 밀착설이다. 김 회장은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경기고 후배인데다 장인인 서정화 의원을 통해서도 한나라당과 지속적인 연결 고리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직후부터 “ 한화가 이 후보측을 적극 지원해 새 정권 들어서 어려움을 겪을 것 ” 이라는 소문이 시중에 끊이질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여ㆍ야에 골고루 ‘ 보험’을 든 다른 기업들과 달리 한화는 한나라당에 ‘올인’을 했고, 그 액수도 상당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김 회장은 김대중 정권과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이 미 공화당 정치인들과 활발한 접촉을 통해 대미 외교활동의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데다 외환 위기 당시 자발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는 것이다.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 ‘ 5대 재벌’이 배제되고 유독 한화가 숱한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낙점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현 정권에 역시 당선 축하금을 통해 ‘ 보험’을 들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나라당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낭패를 보자,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노 대통령 측에 거액을 건넸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든 야든, 청와대든 혹은 검찰이든 사전 교감에 의한 도피 가능성이 가장 강하게 대두되는 것도 이처럼 김 회장의 정치권 인맥이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

    작정하고 캔다면 덩굴째 뽑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누군가 서둘러 봉합을 도왔을 수 있다는 얘기다. 6개월이라고 밝힌 연수 기간도 얼마든 조정이 가능한 것이어서 상황에 따라 1년이 될 지, 2년이 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혹은 최악의 상황이 오면 김우중 전 대우 회장처럼 장기 도피로 이어질지도.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 2004-01-16 14:44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