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인상 수상한 제일모직 고희진 과장고급스럽고 캐주얼한 액세서리 젊은 층에 어필, '세계적 명품' 야심

빈폴스러움으로 승부 건 '고~ 봐'
삼성인상 수상한 제일모직 고희진 과장
고급스럽고 캐주얼한 액세서리 젊은 층에 어필, '세계적 명품' 야심


“당신의 가슴에 햇살이 비칩니다.”

제일모직 빈폴 액세서리 파트의 영업 MD인 고희진(36) 과장. 1968년 원숭이띠인 고 과장은 갑신 년 원숭이해를 맞아 삼성그룹 전 직원 가운데 10명에게만 수여되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홍일점으로 수상했다.

그것도 디자인 부분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삼성전자 가전 부문을 제치고 디자인 대상을 받아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상금 5,000만원과 차장 특진은 그 같은 평가에 걸맞는 포상. 외부인사 영입을 제외하고 제일모직에서 여성으로는 첫 차장 승진이라 최고의 해를 연 셈이다.

“1999년 처음 액세서리 파트를 혼자서 덜렁 맡게 됐을 때는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빈폴이라는 브랜드 하나만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냥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면서 모든 일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열심히 뛰었을 뿐인데….” 고 과장의 수상 소감은 오히려 여성스러운 수줍음으로 가득하다.

‘자전거를 탄 신사’ 빈폴 브랜드의 액세서리 파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1년에는 고 과장을 포함해 4명으로 식구가 늘었고, 2년만에 119억원의 매출에서 4배 가까이 늘어난 437억원을 기록하며 캐주얼 액세서리 시장의 선두주자를 굳혔다. 식구는 겨우 2명이 더 늘었을 뿐이다.

첫 액세서리 제품서 대박

고 과장이 액세서리 파트를 맡은 99년 말까지 만해도 의류업체가 액세서리 사업을 하는 곳은 없었다. 제화 3사가 국내 액세서리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시피 했다. “우선적으로 제일모직의 브랜드와 성격에 맞게 의류를 코디할 수 있는 액세서리를 고안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그러다 보니 가방과 지갑 부문이 첫 타깃이 되더군요.”

누가 가이드라인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혼자 시장조사를 통해 도출해낸 결론이었다. 빈폴 브랜드만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가로 4줄, 세로 2줄의 빈폴 체크무늬를 활용해 만든 천 가방을 첫 작품으로 내놓았다. 옷에 쓰이는 소재를 가방으로 전환한 것. 디자인에서부터 견본 그림까지 직접 작업 지시서를 작성하면서 ‘클래식한’ 느낌의 빈폴 체크무늬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버버리나 폴로의 느낌에 견줄만한 빈폴 특유의 매력을 발산시킨다는 컨셉이었다”고 고 과장은 회고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해외명품에 견줄만한 액세서리 브랜드 빈폴이 나왔다는 입소문을 타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빈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빈폴 지갑 역시 2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물용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성공을 예감한 제일모직은 액세서리 파트에 인원을 4명으로 늘리고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나섰다. 가방과 지갑을 비롯해 모자, 양말, 벨트, 시계, 우산, 헤어 액세서리, 머플러, 장갑 등에 이르기까지 13가지 액세서리 제품이 곧바로 출시됐다. 여기에 다 효자 상품인 가방 소재를 천에서 PVC로 전환하는 변신이 이뤄지면서 매출은 2배 3배 늘기 시작했다.

고 과장은 빈폴 엑세서리의 성공을 ‘빈폴 스러움’으로 설명한다. 그 특징은 4가지. 우선 색상으로 그린 컬러를 꼽는다. 젊은 느낌에다 우아함과 고상함이 함께 살아있는 이미지가 바로 ‘빈폴 스러움’이라는 것이다. 또 빈폴 가방에서 대박을 확인할 수 있었듯이 빈폴의 체크 무늬가 클래식하면서도 젊은 트렌드를 이끌어 낸다. ‘빈폴 스러움’은 또 고급스러움과 캐주얼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고 과장은 지적한다. 여기에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소비자 인지도. 가격대 이상으로 브랜드력이 뒷받침해 줌으로써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택할 수 있는 로열티가 있다는 것甄? 고 과장은 이를 뭉뚱그려서 “범용성이 뛰어난 브랜드 제품”이라고 정리한다. 이는 빈폴 브랜드가 추구하는 전체적인 컨셉이기도 하다.

작은 체구의 고 과장은 겉보기보다는 훨씬 당찬 면모를 숨기고 있다. 그녀는 “삼성인 상 수상으로 다소 부담은 되지만 그 부담이 클수록 욕심이 더 난다”고 웃었다. 그 웃음 뒤엔 뼈가 숨어 있다. 새해에 추가 인력이 배치되면 액세서리 파트에서 약 634억원의 매출을 올릴 당찬 계획을 수립중이다. 이는 지난해 보다 20%이상 성장된 수치. 1인당 효율 및 매출 신장면에서 지금까지 제일모직이 육성한 어느 패션 브랜드보다도 훨씬 높은 실적이다.

“빈폴시계ㆍ우산, 올해의 히트상품 될 것”

가수 보아를 좋아해 동료들 사이에선 ‘고~봐’로 불리는 고 과장은 아침 6시에 출근, 회사 건물 지하의 헬스 클럽에서 1시간 가량 아침을 달리면서 하루를 연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 96년 경력사원으로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문화’에 스스로 익숙해 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인터뷰 중간 중간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어록을 인용할 만큼 삼성인으로의 자부심이 강하다.

고 과장은 최근 ‘이제 시계제품은 패션이다’라는 이 회장의 한 마디에 영감을 얻어 빈폴 시계 제품 고안에 빠져 있다. ‘의류를 제외한 모든 영역이 액세서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는 2004년의 히트상품으로 빈폴 시계와 우산을 꼽는다. “사실 우리나라 인심 중 가장 후한 것이 우산에 대한 인심일 거예요. 누가 비싼 돈을 들여 브랜드 우산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나 이젠 젊은이들부터 점차 바뀌고 있어요. 브랜드 제품에 대한 소유 개념이 커지면서 우산도 브랜드 제품의 시대가 곧 도래할 거예요.”

삼성인 상중 디자인 부문상을 수상했지만 디자인 이전에 제품의 기능성을 무엇보다 먼저 따진다고 고 과장은 말했다. “가장 가슴 아플 때가 출시한 제품이 디자인은 예쁘지만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때입니다. 기능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제품은 아무리 화려해도 액세서리로서의 제품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해요. 제품을 개발할 때 이런 원칙을 꼭 지킵니다.”

고 과장은 무엇보다도 현장을 중시한다. 소비자의 기호와 제품의 판매 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매주 3차례 이상 명동과 강남 유통가를 발로 뛰고 해외로 나다닌다. 올해 상반기 스케줄은 이미 꽉 잡혀 있는 상태. 3월에는 밀라노와 런던, 파리의 상품 기획전에 참여해야 하고 일본 출장 역시 2번 이상 잡혀 있다. 지난해에는 6개월간 일본에서 브랜드 벤치마킹 작업을 하기도 했다.

6명이라는 작은 조직의 일원에서 그룹 전체의 주목을 받는 핵심 인력으로 부각되면서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겁다”는 고 과장. “수상을 계기로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룹 내부 뿐만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아 가치를 높이는 게 새해 포부”라고 했다. 빈폴이 캐주얼 명품으로 국내에서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제는 세계의 명품으로 업그레이드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의 액세서리 분야를 이끌어나갈 고 과장의 야심찬 포부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1-28 15:45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