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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에 '관치 태풍' 주의보
'관치의 후예' 김석동 재경부 컴백
가차없는 시장개입 천명, '관치라인' 재경부 장악 관측도


지난해는 대통령에서부터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까지 숱한 ‘말말말’을 만들어 낸 해였다. 그 중 정부 관료에게서 나온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는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의 말이었을 듯 싶다. 이 짧은 말 한 마디는 ‘김석동’이라는 관료가 어떤 사람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해 4월 초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카드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금융정책협의회가 끝난 뒤였다. 신용카드사 증자 규모를 늘리고 투신권 지원을 위해 은행 등이 투신권이 보유한 카드채를 매입토록 하는 내용의 이른바 ‘4ㆍ3 카드 대책’이 발표됐다. 기자들은 실무 책임을 맡고 있던 김 국장을 다그쳤다. “관치금융이 부활하는 것 아닙니까?” 이 때 그가 내놓은 답변이 바로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대책 자료는 상황이 심각한 만큼 모든 기관과 협의를 거쳐 한줄 한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과거에 정부가 밀실에서 방안을 만들어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놔두고도 정부가 가만히 있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정부 부처 국장급 인사 교류에 따라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옛 재무부 이재국 출신으로 재경원, 재경부 시절을 거쳐 1999년5월 금감위로 옮겨 갔으니 거의 5년 만의 친정 복귀다. 금정국장으로서 그의 일성(一聲)도 예사롭지 않다. “앞으로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필요할 경우 가차없이 시장에 개입하겠다.” 녹록치 않은 시장과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 대책반장에서 관치를 싹 틔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53년생으로 동년배보다 늦은 행시 23회로 관가에 입문했다. 대학 졸업 후 무역 회사에 취직해 봉제 수출을 위해 해외를 누비는 이색 경력을 안고 있는 탓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이후 이력은 화려했다. 5ㆍ8 부동산 특별대책반장(90년), 금융실명제 대책반장(93년),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 및 부동산 실명제 총괄반장(95년), 한보대책 1반장과 금융개혁법안 대책반장(97년)…. 탁월한 일 처리 능력을 인정 받으면서 주요 사안이 터질 때마다 그에게는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 하도 비밀 작업을 위해 호텔에서 투숙을 하는 일이 잦아 “그가 사라지면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그에게 ‘대책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을까.

하지만 그의 이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이다. 김석동이라는 이름 석 자를 관가에 뚜렷이 각인시킨 이력임과 동시에 지금껏 이어지는 그의 말 많은 관치론의 바탕이 된 이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97년 환란을 앞두고 원화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무렵이었다. 그의 역할은 끝없이 추락하는 원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최일선의 사령관이었다. 그 해 11월 중순 1,000원을 돌파한 원ㆍ달러 환율은 12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행을 공식 발표한 이후에는 1,900원까지 치솟았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부도를 막기 위한 그의 노력은 사투에 가까웠다. 밤잠을 설쳐 가며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협박 반, 사정 반 매달렸다. “달러 사자 주문을 내면 죽여버리겠다”는 험한 말도 마다 않았다.

그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환란 극복의 공신’으로 치켜 세우기도 했다. 그가 악역을 자처하며 투기 세력과 맞선 덕분에 그나마 환율을 방어해낼 수 있었다는 평이었다. 심지어 감사원 조차 환란 특감 후 김 국장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형적인 구시대 관치라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환율변동폭은 그대로 묶어놓은 채 창구지도 등의 강압적 방법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장에 오히려 짐이 됐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런 ‘김석동 식 관치’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시장주의자 변양호의 바통을 물려받다



그의 금정국장 행이 관심을 끄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임 변양호 국장과의 현격한 스타일 차이다. 54년생으로 김 국장의 경기고 1년 후배이기도 한 변 국장은 관가에는 행시 19회로 그보다 4회 먼저 발을 들여 놓았다. 재경부 금정국장과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으로 오랜 호흡을 맞춰 온 이들은 호형호제하며 하루에도 몇 차례 전화를 주고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판이하다. 김 국장이 대표적인 관치주의자라면, 변 국장은 시장주의자로 통한다. 둘 다 재무부 이재국 출신의 금융 베테랑들이지만 김 국장이 ‘이정재(금감위원장ㆍ행시 8회)- 정건용(전 산업은행 총재ㆍ14회)- 유지창(산업은행 총재ㆍ14회)- 이종구(전 금감원 감사ㆍ17회)’로 이어지는 이재국 핵심 라인의 막내 격으로 분류되는 반면, 변 국장은 상대적으로 이재국 정서가 많이 희석화한 편이다. 월가(街)에서도 인정해줄 만큼 국제 금융에 밝은데다 전통적으로 EPB(경제기획원) 출신의 몫인 경제정책국장 후보로도 유력하게 거론될 정도였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점차 국내-국제 금융의 벽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금정국정으로서 김 국장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둘은 성격이나 일하는 방식에서도 대조적이다. 김 국장이 화끈하고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성격이라면, 변 국장은 조용하고 고지식하고 어찌 보면 답답한 구석이 있는 성격이다. 취재를 해야 하는 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지간해서는 입을 잘 열지 않는 변 국장보다는 과장과 허풍을 적절히 섞는 김 국장이 더 영양가(?)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일로 보자면 변 국장이 금리 자유화나 회계 투명화, 집단 소송제 등 통찰력을 가지고 금융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김 국장은 뛰어난 현장 감각과 순발력으로 능수능란하게 사안을 요리해 나가는 해결사의 기질이 다분하다.

▽ 금융시장에 독일까 약일까

그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능력 탓인지는 몰라도 김 국장은 윗사람들로부터도 늘 총애를 받아왔다. 이는 재경원 시절부터 ‘우 석동, 좌 XX’식의 표현이 적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몸 담았던 금감위에서도 이정재 위원장의 총애를 받으며 양천식 금감위 상임위원과 함께 ‘우 석동, 좌 천식’으로 통했다. 사리에 맞지 않다 싶으면 윗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대드는 변 국장과는 그런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건용 전 산은 총재 역시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스스로를 관치의 화신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정 전 총재의 뒤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혹자는 김 국장을 ‘관치의 마지막 후예’로 표현하기도 한다. 김진표 부총리의 4월 총선 출마설로 정 전 총재가 후임 부총리로도 거론이 되고 있어 일각에서는 ‘정건용-김석동’의 관치 라인이 재경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김 국장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김석동 스타일은 현안 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굉장히 아슬아슬하다. 그는 관치와 자율의 담장을 위태롭게 걷는다. 쥐어 짜서 현안을 잘 덮기는 하지만, 무리수 탓에 후유증이 따르기도 한다. 그의 방식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금융 발전에 도움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금정국장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그에게 던지는 주문이기도 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4-02-0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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