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도박株된 LG카드 하루 거래량 1억 7000만주거래대금 1000억원대의 거대 도박장

LG카드, 대박 혹은 쪽박의 널뛰기
거대 도박株된 LG카드 하루 거래량 1억 7000만주
거래대금 1000억원대의 거대 도박장


12영업일 연속 하한가, 3영업일 연속 상한가. 모 아니면 도다. 일단 손에 쥔 이상 중간에 되팔 여지도 별로 없다. 장이 서면 곧 바로 하한가로 추락하거나 아니면 상한가 행진이다. 널 뛰는 주가를 두고 적정 주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어찌 보면 지금의 LG카드주는 주식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도박장이다. 하한가 행진이 멎은 1월26일에는 하루 거래량이 1억7,000만주를 넘어서 거래 대금이 1,000억원에 육박했다. 국내 유일의 공인 도박장이라는 강원랜드 한 달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다.

운 좋게 베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이들은 연일 터지는 잭팟에 환호를 연발한다. 물론 어차피 도박인 마당에 마음이 편할 리만은 없다. “일단 상승세가 멈추면 팔아 치울 새도 없이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텐데….”

족보 하나 없는 패를 들고 무모한 베팅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조바심을 내는 영락없는 도박꾼들이다. 주식 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표현이 정말 맞기는 한 이야기인 것일까.

▽ 하루 수익률 50% 이상

3만원을 넘나들던 LG카드 주식이 이른바 ‘껌 값 주식’으로 전락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6개월 정도였다. “혹시나”하며 주식을 팔 시점을 놓친 주주들은 멈추지 않은 하한가 행진에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LG카드 주식이 본격적으로 도박 대상이 된 것은 주가 500원 벽이 무너지던 1월26일이었다. 12영업일 연속 하한가에 이어 이날 역시 하한가로 장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듯했다.

이상 기미는 외국계 창구에서 감지됐다. 오전 9시50분께. 한 외국계 창구에서 200만주가 넘는 매수 주문이 유입됐다. 별다른 호재도 없었음에도 외국인 매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데이트레이더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공방의 시작이었다.

이날 주가는 전날보다 35원(6.86%) 오른 545원에 마감됐지만 하룻동안 하한가에서 상한가까지 변동폭이 무려 30%에 달했다. 하한가에 1억원 어치 주식을 사들여 상한가에 되팔았다면 이날 하루에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3,000만원이라는 얘기였다.

이날 하루 거래량은 전체 상장 주식수 1억5,719주를 크게 넘어선 1억7,224만주. 거래소 전체 거래량(4억8,870만주)의 35%를 초과하는 물량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LG카드 주식을 사고 팔기를 반복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실제 LG카드 주식 만으로 하루에 50% 이상의 수익률을 낸 투자자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일 천하에 끝날 것이라던 우려도 도박꾼들의 열기 앞에서는 기우였다. 일단 붙은 탄력은 거칠 것이 없었다. LG 계열사들이 LG카드에 유동성을 지원키로 했다는 소식도 불을 지폈다. 이틀간의 주가 공방 이후 28일 상한가에 진입한 주가는 주말까지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상한가 진입 속도도 갈수록 빨라져 금요일인 30일에는 장 개시와 함께 곧바로 상한가에 올라서면서 매수를 원하는 도박꾼들의 애를 태웠다. 사겠다는 이만 있을 뿐 팔겠다는 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30일 거래량은 170만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LG카드 도박의 주역들은 개미들. 개인들이 핏대를 세우며 부지런히 도박을 하고 있을 무렵 외국인이나 기관들은 열심히 주식을 팔아 치웠다. 상한가 행진 기간 동안 외국인 지분율이 6%대에서 다시 8%대로 상승하기는 했지만 시가 총액이 크게 줄어든 마당에 의미 있는 변화는 아니었다.

▽ 40원 짜리 주식이 800원대 거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재의 주가 상승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세종증권 김욱래 연구원은 “44대 1의 대규모 감자를 앞두오獵?상황에서 적정 주가라는 것이 산정조차 불가능하다”며 “계열사 유동성 지원 등의 소식이 호재로 작용한다는 것 자체가 설명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부실을 정리한 이후 기업의 가치가 얼마가 될 것인지에 대해 예측이 어려운 탓에 대부분 분석을 꺼리고 있지만 일부 증권사들이 자체 산정한 LG카드의 적정 주가는 100원을 채 넘지 않는다. 현재 주가의 10분의 1, 심지어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상화 후 LG카드의 기업 가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단순히 장부 가치로만 놓고 보면 8,00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 채권단이 우선 1조원 증자 후 감자를 거쳐 추가로 3조원을 증자하는 등 총 4조원 증자에 나서지만 잠재 부실이 3조2,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화에 따른 기업 가치는 단순한 장부 가치보다는 높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 적게는 1조원에서 많게는 2조원 이상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향후 기업 가치가 얼마가 되든 현재의 적정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적정 주가의 계산 방식은 단순하다. 삼성증권에서 예측한 LG카드의 증자 이후 기업 가치는 1조2,000억원. 산업은행의 계획대로 총 발행 주식수가 6억주 가량에 달한다면 주당 가격은 2,000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 주가는 감자 이후의 주가인 만큼 감자 비율인 44로 나누면 현재 주가의 적정 수준은 40원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삼성증권 송상호 수석연구원은 “설사 채권단의 증자 대금 4조원이 고스란히 향후 기업 가치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적정 주가는 200원 안팎에 불과하다”며 “44대 1의 감자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주가에 호재가 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는 호재보다는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대체적인 지적. 한미, 외환은행 등이 LG카드 지원을 꺼리면서 자칫 지원을 약속한 다른 은행들에게까지 불똥이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최악의 경우 감자, 증자를 거쳐 LG카드를 정상화하는 방안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시한폭탄 언제 터질까

감자나 퇴출을 앞두고 주가가 일정 수준까지 떨어지면 투기꾼들의 입질이 대거 몰리는 사례는 이전에도 자주 목격됐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금융팀장은 “외환 위기 시절 퇴출을 앞두고 있던 종금사 주식 사례를 유심히 봐야 한다”며 “주가가 500원까지 추락했다가 1,000원으로 치솟고, 다시 200원으로 추락했다 500원을 회복하는 등의 이상 흐름을 보였다”고 말했다. 동아건설이나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주식도 일정 수준까지 주가가 추락한 이후에는 도박꾼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됐다.

그렇다면 언제든 휴지 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는 주식이 왜 도박 세력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는 것일까. 삼성 송상호 수석연구원의 설명은 이렇다. “삼성전자는 1만원이 올랐다고 해도 절대 금액이 큰 것 같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2% 미만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500원 짜리 주식인 최저 단위인 5원만 올라도 1%씩 상승을 하게 되죠. 시가 총액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변동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투기적인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가가 높지 않기 때문에 설사 투자금을 모두 날릴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대박을 기대하며 투자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폭탄 돌리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상승 랠리가 멈추는 순간, 누군가는 그 폭탄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이미 이 글이 나가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지도 모르지만 현대증권 유정석 연구원은 이렇게 충고한다. “도박장은 결코 손해 보는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도박에 참가하는 사람의 끝은 패가망신일 뿐입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4-02-04 13:15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