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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쇼크, 제2 금융 빅뱅 오나
'금융제국' 씨티그룹 국내 상륙
한미은행 인수로 국내 우량고객 대이동 등 금융시장 회오리 예고


“선진금융기법을 갖춘 글로벌 플레이어가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위험 요인이 분명하다. 특히 씨티는 소매 금융에 강점이 있어 거액 거래선에서 위협을 받을 것이다.”(김정태 국민은행장) “국내 은행권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했다지만 3년여에 불과하다. 수십년간 선진 기법으로 무장한 씨티와는 견줄 바가 못 된다. 돈 되는 고객이 모두 씨티 쪽으로 이동한다면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이덕훈 우리은행장)

칼라일(한미은행) 뉴브리지캐피탈(제일은행) 론스타(외환은행) 등 외국계 펀드가 시중은행을 인수할 때마다 여론은 “선진금융 기법이 몰려온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의외로 시중은행장들은 무덤덤했다. 아니 냉소적이었다. 투기 펀드의 속성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다르다.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결코 엄살이 아닌 듯하다. “그래도 해 볼만 하다”는 말이 오히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사족처럼 들린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서로 리딩뱅크가 되겠다며 다퉈 온 국내 시중은행들에게 전 세계 1억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한 ‘금융 제국’ 씨티그룹의 본격적인 국내 상륙은 ‘쇼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한미, 상장 폐지 후 완전 자회사로 운영될 듯



‘칼라일과의 지분 인수 본계약 →공개 매수 통한 지분 100% 인수 →상장 폐지 →합병 후 완전 자회사 운영.’

향후 예상되는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 시나리오다. 지금까지 씨티은행이 미국 외 지역에서 은행을 사들일 때는 대부분 이런 방식을 선호했다. 2001년 멕시코 바나멕스 은행을 125억 달러(15조원 가량)에 인수할 당시 소액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씨티그룹 주식과 맞교환해준 뒤 소각한 것이 최근의 사례다. 물론 기존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을 당분간 별도의 브랜드로 운영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처럼 씨티은행은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지속하고, 한미은행은 중산층 이하 서민들을 대상으로 소매 금융 영업을 특화시키는 방식도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 금융기관들이 최우선시하는 효율성 측면을 고려해볼 때 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기존 조직을 재편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외국 은행의 특성상 기존 조직은 예금과 대출 등 소매 금융만 전담하고 투자은행(IB) 업무나 자산운용 부문은 별도로 떼 내 따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우량 고객 블랙홀될까

가장 큰 관심사는 소매 금융 분야에서 한미은행 인수가 얼마나 파급력을 낼 수 있을 지다. ‘세계 1위 은행’과 피할 수 없는 격전을 치러야 할 국내 은행들은 씨티측이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춘 한미은행을 인수할 경우 국내 우량 고객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는 90년대 들어 소매 금융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선진 기법을 무기로 소매 전문 은행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영업에서도 확인을 할 수 있다. 1967년 기업 금융으로 국내에 첫 발을 내디딘 씨티은행 서울지점은 89년 국내 최초로 프라이빗뱅킹 서비스를 도입한 데 이어, 90년 현금자동입출금(ATM)기 서비스, 91년 VIP 고객을 위한 씨티골드 서비스 등 선진 금융 기법을 국내에 잇따라 선을 보였다. 지금은 국내 은행들도 보편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만해도 이 모든 것들이 하나 하나 국내에는 낯선 충격이었다.

불과 12개 지점망을 통한 영업에서 이제 225개의 전국적인 지점망을 추가로 확보한 만큼 우량 고객의 대이동은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금융 상품, 1대 1 자산관리 등은 거액 자산가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요인이다.

씨티은행은 지금까지 국내 영업에서도 볼 수 있듯 공격적이기 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춰가는 스타일. 하지만 서울지점 개설 이후 이미 37년간 국내 영업을 하면서 시장 분석을 충분히 끝낸 만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란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전세계 네트워크와 시너지 효과도 노려

지난해 9월 말 현재 씨티은행 전국 12개 지점의 평균 수신고는 5,139억원으로 적게는 국내 은행의 3배에서 많게는 10배 정도 앞서고 있다. 구좌당 예금액 역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국내 외국은행 지점의 저축성 예금 평균 잔고가 8,080만원으로 국내 은행(315만원)보다 25.6배나 많다는 통계에서 간접적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씨티는 이익이 나는 부문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이다”며 “프라이빗뱅킹(PB)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우량 고객이 급속도로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전세계 100여국에 3,500개에 달하는 영업망이 국내 은행 지점과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경우 국내 시중은행들의 우량 고객 이탈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 인가를 얻어 국내 예금자에게 전 세계 씨티은행 지점을 통해 달러 현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위력은 배가될 수 있다”며 “국내은행들이 외환 위기 이후 규모를 키우고 선진 금융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막강한 자본과 네트워크의 위력 앞에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선진 금융기관 공습 신호탄

씨티은행의 국내 상륙은 선진 금융기관의 본격적인 국내 진출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번 한미은행 인수전에 씨티와 함께 스탠다드차터드은행, HSBC 등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는 등 외국 금융기관들에게 한국 금융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유럽과 일본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선진 금융기관들에게 한국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다”며 “그들의 진출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눈 여겨 봐야 할 곳이 외국계 펀드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이다.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은 해외 펀드의 국내 은행 인수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에 대해 이렇게 누누이 말해왔다. “부실이 많고 투명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 선뜻 인수를 원하는 금융기관은 없다. 펀드는 그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실을 털어내고 경영 지표를 튼실히 해 놓은 뒤 금융기관에 되팔면 펀드는 차익을 남기고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덜어내는 윈-윈 게임인 것이다.” 취약한 국내 자본을 감안할 때 뉴브리지캐피탈(제일은행) 론스타(외환은행) 등도 칼라일의 전철을 밟아 멀지 않은 장래 외국 정통금융기관에 은행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았던 HSBC와 뉴브리지캐피탈의 협상설도 언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지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이헌재 펀드’가 인수를 추진했던 우리금융지주회사 역시 부실을 대부분 털어냈다는 점에서 이들 외국 금융기관들에게 좋은 입질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로 국내 은행권은 이제 국내 자본과 외국계 펀드의 대결 구도가 아닌, 국내 자본과 선진 금융기관의 대결 구도로 재편될 기로에 섰다. 그것은 체질 개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제2의 금융 빅뱅(폭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 2004-02-2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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