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파괴로 틈새시장 공략하며 불황 돌파

초저가 마케팅 "밑져도, 판다"
가격파괴로 틈새시장 공략하며 불황 돌파

부담 없이 지갑 열게 하는 ‘초저가 마케팅’이 뜬다. ‘부자들도 지갑을 안 연다’고 말할 정도로 불황이 계속되는 요즘, 경기가 움츠러든 시기에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마련이지만, 품질도 좋으면서 가격은 초저가인 상품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미 ‘2천원 생활용품점’이 인기를 얻었고 최근에는 외식, 미용산업 등에서 저가(低價)를 내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비용 절감으로 거품을 빼면서 박리다매로 승부, 독자적인 틈새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다.

며칠 전, 조카들을 데리고 서울 종로의 한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최소한 몇 만원은 깨질 것이라 예상하고 들어갔는데, 의외로 저렴한 가격에 내심 놀랐다. 기존에 1,600원 하던 햄버거가 1,000원에 판매되고, 디저트 종류인 아이스크림, 감자 튀김, 쉐이크, 핫초코 등도 모두 1,000원, 그러니까 ‘1000원 짜리 메뉴’가 다양했다.

그곳 뿐만아니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최근 경쟁하듯 ‘1000원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불황 극복의 한 방편으로 ‘단 돈 1000원’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초저가 마케팅’으로 고객 잡기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햄버거와 감자 튀김 등 세 명이 배 터지게(?) 먹고도 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 패스트푸드 업계 ‘1,000원 마케팅’ 경쟁

몇 년 전부터 가격 파괴에 앞장선 맥도날드는 햄버거와 음료, 파이, 아이스크림 등 10개 메뉴에 대한 1,000원 균일가 정책을 고수하고, 롯데리아 역시 앞으로 치킨과 디저트 메뉴 등에서 1,000원 메뉴를 이어갈 방침이다. 다른 패스트푸드점도 다양한 메뉴 개발과 저가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얇아진 지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얼마 전, 종로에서 만난 대학생들. 학원에서 영어 수업을 마치고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이들이 찾은 곳은 ‘1,000원 만두집’.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죠. 그런데 거리를 지나다가 만두 1인분에 1,000원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죠. 평소 좋아하는 만두를 단 돈 1,000 원에 양껏 먹을 수 있으니 끼니도 해결하고 자주 이용해요.”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 한판에 8개씩 바로 익혀 나오는 ‘1,000원 만두’는 맛도 좋고 먹고 나면 속도 든든하다.

먹거리 가격 파괴는 만두뿐이 아니다. 길거리가 아닌, 어엿한 김밥전문점에서 파는 김밥 한 줄도 이젠 1,000원이다. 1,000원 김밥전문점은 24시간 영업에, 배고프면 언제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단 돈 1,000원에 햄버거와 콜라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한 대학교 앞의 노점 햄버거집은 이 지역의 명물로 떠올랐다. 돼지고기 양배추 등을 이 집만의 독특한 소스로 버무려 속을 꽉 채운 햄버거에 무제한 콜라라니… 한번 먹어본 학생들은 10분 이상 기다려도 출출하면 다시 찾을 정도로 마니아가 된다고 한다.

매니큐어 1,000원, 립스틱 3,300원, 스킨로션 6,000원…. 화장품 가격이 이렇게 저렴하면, 예전엔 ‘질도 낮고 싸구려’라고 치부했을 터지만, 요즘엔 1,000원에서 1만 원대의 저가 화장품이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에서 저가 화장품 시장의 물꼬를 튼 것은 초저가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 2002년 서울 명동에 1호 점을 낸 이후, 미샤는 입 소문을 타고 많은 고객 층을 확보했다. 이 매장에서 판매되는 기초, 색조화장품 및 바디용품 등 600여개 제품 가격은 3,000~9,000원이며 가장 비싼 레티놀 에센스도 9,800원으로 만원을 넘지 않는다.

- 저가 화장품 시장 점유율 늘어

이곳에서 만난 회사원 오모씨는 “가끔 명동에 쇼핑하러 오는데, 한 화장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호기심에 처음 들어가 봤다”며 “무엇보다 값이 싼 게 좋고, 팩과 바디 용품을 사서 써보니 다른 유명 제품과도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즐겨 찾게 된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한 번 다녀간 고객들 중 절반 이상이 다시 매장을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샤의 성공 요인은 유통비, 중간 마진 등 거품을 뺀, 차별화된 전략으로 알뜰 소비자 층을 공략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화장품 회사의 경우, 거액의 광고비, 디자인 개발비 등 여러 유통단계를 거치며 마진이 붙지만 미샤는 제조업체가 곧바로 직영 매장을 통해 소비자를 상대하기 때문에 그만큼 저가로 제품공급이 가능한 것이다.

미샤는 최근 현대백화점 목동점 영시티몰에 입′玖庸? 월 1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효자 매장으로 급부상했다. 뒤이어 미아점 영라이브에도 매장을 열었는데, 하루 수백 명의 여성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만 신경 써온 백화점들도 이제 눈높이를 낮춘 마케팅으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한 셈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10대 후반~20대 초반 여성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보고 있다.

- 미용실도 절반이하 가격으로 승부수

서울에서도 금싸라기 땅, 강남에 자리한 한 미용실은 파마 가격이 1만5,000원이다. 보통 5만~10만원 하는 매직 파마도 이곳에선 2만원. 기존 미용실의 절반 가격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한 이 미용실은 이미 성공대열에 올랐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PC와 캔 음료가 무한정으로 서비스되는 것도 장점이다. 하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주말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모든 여성들의 소망. 피부 관리에 관심은 있지만 젊은 여성들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피부 마사지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격 부담 없이, 5,000원이면 피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보통 뷰티숍에서 피부관리 한 번 받으려면 최소 3만원에서 최대 몇 십만 원인데 반해, 이곳은 10분의 1 수준이다. 가격파괴 뷰티숍인 ‘이지은 레드클럽’은 입 소문을 타고, 현재 전국에 약 40 개의 뷰티숍이 성행 중이다. 이곳은 첨단 미용 기계를 도입해 인건비를 절감, 가격의 거품을 제거했고 경쟁력 있는 피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 수를 늘려 나갔다.

이 같은 가격 할인 파괴점이 생긴 것이 처음은 아니다. IMF 직후에도 가격 파괴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은 경험 부족과 불확실한 시장 판단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가격 파괴점들은 박리다매를 노렸지만 이어진 경제 불황으로 재고만 쌓이고 품질만 저하되는 현상을 빚었다.

최근의 ‘저가, 실속형’아이템은 새로운 영업전략과 유통마진 축소로 원가를 줄였고, 품질도 정상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이러한 ‘초저가 마케팅’에 더욱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불황이라고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내려간 것은 아니다. 품질에 비해 저렴하고 실속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합리적인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허주희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3-24 21:59


허주희 객원기자 cutyheo@hanmail.net